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경선이 한창인 지금 미 정치권의 최고 스타는 단연 허먼 케인(65)이다. 애초 그릇이 아닌 듯 했던 그가 선두를 위협하는 유력주자로 부상하며 경선 판도를 뒤집어놓더니, 지금은 섹스스캔들로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케인이 없었다면 공화당 경선 판도가 얼마나 심심했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케인의 이력은 경쟁 주자들에 비하면 별반 내세울 게 없다. 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이발소와 운전수, 건물 관리인 등 3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야 했던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햄버거 체인인 버거킹의 필라델피아 지역 책임자로 일했고, 이 때의 성공을 발판으로 피자 체인점인 '갓 파더'의 최고경영자와 전미요식업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정치를 얘기할 때마다 하느님을 자주 언급한다. 이번 경선 출마도 하느님이 이끌었다고 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달리 정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2000년 공화당 경선에 나와 중도에서 포기했고, 2004년에는 조지아주 상원의원에 도전했으나 역시 당내 경선에 막혔다. 5월 경선 도전을 선언했을 때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은 것은 이번에도 들러리만 서다 끝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두 거물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를 제치고 여론조사에서 1위를 했고, 연일 섹스스캔들이 대서특필되는데도 지지율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정치 전문매체인 폴리티코가 스캔들을 처음 폭로한 다음날에는 오히려 후원금이 더 쇄도했다. 성희롱 피해자가 속속 나타나고, 의심스런 정황이 점점 사실로 굳어지는데도 지지자들은 "정치공세"라며 되레 정치판을 비난한다.
케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미국을 다시 새롭게 해야 할 때(It's time to renew the USA)'라는 문구가 크게 보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4년 전 외쳤던 '변화(change)'의 다른 표현이다. 이 말에는 오바마의 개혁이 실패했다는 뜻도 담겨 있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가 검은 피부색에 정치경력도 일천한 그에게 매료되는 것은 패거리 정치판을 개혁할 것이라고 기대를 걸 만한 사람을 달리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모로 보나 대통령 감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를 지지하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한 낡은 워싱턴에 대한 분노의 표시이기도 하다.
한 신문은 케인이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무수히 많지만, 그 모든 이유를 뒤집을 수 있는 한가지를 케인은 갖고 있으며 그것은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말한다. 양당 체제가 아닌 제3의 정당이 필요하다는 논거로 케인 신드롬을 해석하기도 한다. 미국의 유권자에게 민주당과 공화당은 국가 미래는 뒷전인 채 선거에 이기는 데만 혈안이 된 괴물이라는 좌절감이 퍼져 있다.
지금 미국 정치판에는 케인이 갓 파더에서 일하던 1991년 불렀다는 노래가 유행이라고 한다. 존 레넌의 'Imagine'과 'Give Peace a Chance'를 가스펠 형식으로 패러디 한 'Imagine There's No Pizza'라는 노래다. 가사는 이렇다. '피자가 없는 것을 상상해 봐요. 아무리 노력해도 타코와 켄터키 프라이드만 먹을 수는 없어요.'
그는 자유를 피자에 비유했다고 했다. 유권자들은 타코나 켄터키 프라이드를 생각하며 무엇을 떠올렸을까. 롬니, 페리, 오바마 대통령….
황유석 국제부 차장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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