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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수능과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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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수능과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

입력
2011.11.0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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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 날이다. 중학생 딸을 둔 학부모인데도 나는 대입 제도에 대해서 아는게 없다. '입시제도가 수없이 많이 바뀐데다, 아직 딸아이가 수능을 볼 나이가 아니어서 관심을 두지 않은 탓'이라고 변명을 하기에는 유치원 다닐 때부터 아이 스펙을 쌓아주려는 극성엄마들이 더 많은 현실에서 내가 아이교육에 너무 무관심한 것은 아닌가, 기타 학원 달랑 하나 보내는 내가 너무 아이를 방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생기는 아침이다.

나는 수능세대가 아니라 학력고사 세대다. 1984년에 학력고사를 봤으니 벌써 몇 년 전인가? 시험날 입었던 옷, 들고 갔던 책가방도 기억나고, 걸어가도 충분한 거리인데도 시험 잘 보라고 지금은 역사 속에 사라진 포니 승용차로 초등학교 입학식 이래 처음으로 고사장까지 바래다주던 부모님 생각도 난다. 시험을 치르던 교실, 수험표에 붙은 사진, 마킹 잘못해서 잔뜩 긴장하며 답안지 바꾸던 기억까지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나이 먹으면서 나이와 비례해 심해지는 건망증 때문에 걱정인데, 이십칠년 전 열아홉 살 때 기억이 이렇게도 선명한 것은 그날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그날 하루의 결과가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걸 어린 나이에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좋은 대학, 좋은 과가 직업을 결정하고, 친구를 결정하고, 배우자를 결정하고,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이 사회라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해버린 학력고사 세대 부모들은 아이들의 친구가 되고 멘토가 되고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스펙을 위해 기러기 아빠가 되고 사교육비를 위해 부업전선에 뛰어드는 엄마가 되고 끊임없는 잔소리쟁이가 됐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인생의 많은 부분을 그 하루가 결정하는 것일까? 오늘 하루가 오늘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일까?

며칠 전, 수능을 치르는 지인의 딸에게 줄 찹쌀떡과 엿을 사려고 제과점에 들렀다. 제과점에서 나는 두 번 놀랐다. 찹쌀떡이랑 엿이 이렇게 비쌌구나 놀랐고, 찹쌀떡과 엿보다 더 높게 쌓여져 있는 각양각색의 빼빼로라 불리는 과자 더미에 또 놀랐다. 천년에 한번 오는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라는 광고. 올해가 2011년이니까 3011년이 되어야 11이 여섯 번 겹쳐지는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가 다시 온다는, 그래서 천년에 한번 오는 빼빼로 데이라는 의미란다. 과자회사가 만들어낸 상술에 마음 한편이 씁쓸하면서도, 천년이란 시간 속에서 우리 인생은 정말로 잠깐이구나, 시험 하나가, 대학 간판이 인생을 결정하는 삶을 그대로 용인하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고 우리는 너무 소중한 것 아닌가, 좀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엉뚱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2111년, 2211년 2311년에도 11월 11일이 있을 텐데 왜 천년만에 오는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라고 한거지? 오늘 수능을 볼 지인의 딸에게 줄 찹쌀떡에 젓가락 과자를 포함시켜 말아 한참을 망설였다. 몇 번을 생각해도 수능과 빼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수능 치른 아이들은 수능 마치고 그래서 짐 하나 덜고 관문 하나 더 통과하고 밀레니엄이든 빼빼로 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딸아이는 친구들에게 젓가락 과자 돌릴 생각에 한껏 신이 나 있다. 천년은커녕 백년도 못사는 우리 인생이 과자회사가 만들어낸 기념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작은 축제들로 가득해지길 바란다. 오늘 수능을 치른 우리 아이들에게, 앞으로 수능을 치러야 할 우리 아이들에게 삶은 시험이 아니라 축제이면 좋겠다.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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