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교과부가 확정, 발표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에 반발해, 역사교과서집필기준개발위원회 위원장이 사퇴하고 역사학계가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등 후폭풍이 일고 있다.
집필기준 작성을 주도했던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9일 역사학계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역사교과서집필기준개발위원회 위원장직과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역추위) 위원직을 사퇴했다.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이 교수는 보수와 진보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갈등 조정 능력이 뛰어난 학자였다. 이 분마저 사퇴한 것은 학자로서의 본분조차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집필기준 개발과정이 잘못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교수의 사퇴로 역추위의 보수편향은 더욱 심해지게 됐다. 역사교육과정 개정안 고시 직전, 교과부가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임의 수정한 것에 항의해 9월 20명의 역추위 위원 가운데 9명이 사퇴한 데 이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던 이 교수마저 사퇴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역추위는 이배용 위원장(전 이화여대 총장)의 측근과 제자들, 공무원이 주축이 돼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기 힘든 구조라는 지적이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브랜드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위원장은 역추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정부 의견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다.
이에 따라 앞으로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개정과정에서도 지금까지와 비슷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역추위는 교과부 장관의 자문기구에 불과했음에도 역사 교육과정 개발에 깊이 관여했고, 당장 12월 확정될 고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도 역추위가 검토ㆍ자문하게 된다.
역사학계는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이인재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연세대 교수)은 "학문적인 근거 없이 정치적인 이유로 교과서 집필기준이 처리됐다"며 "이는 장관이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역사학자 중심으로 법적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김영진(민주당) 의원도 이날 성명을 내 "정부가 5ㆍ18민주화운동을 역사에서 지우려는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다"며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정상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새 집필기준을 강행한 것은 현 정부의 몰역사성과 비민주성을 드러낸 독선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인재 교수는 "다른 교과에는 없는 자문기구인 역추위를 만들고, 이를 앞세워 역사 교육과정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바꾼 것은 유례가 없는 일로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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