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는 총수 일가가 지분을 많이 보유한 물류, 시스템통합(SI), 광고회사 등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업체의 경우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가 전체 매출의 71%나 됐고, 더욱이 계열사와 맺은 대부분의 계약이 공개 경쟁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이뤄졌다. 경쟁력이 떨어져 모기업에게서 받은 일감을 중소기업에 다시 하청주면서 수수료만 떼먹는 기업도 많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9일 총수가 있는 대기업 계열 광고, SI, 물류 등 20개 업체의 지난해 실적을 조사한 결과, 이들 업체가 매출액의 71%를 모기업이 몰아준 일감으로 채웠다고 밝혔다. 이는 공정위가 지난달 발표한 43개 대기업집단 전체 내부거래 비중(12%)의 6배에 달하는 것이다. 공정위는 “당시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를 조사하면서 문제의 소지가 많은 광고, SI, 물류 분야를 따로 조사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의 88%가 수의계약을 통해 이뤄졌는데, 이는 계열사가 아닌 업체들과 맺은 수의계약(41%)의 두 배가 넘는다. 특히 현대글로비스, 삼성전자로지텍, LG하이비지니스로지스틱스, 롯데로지스틱스 등 4개 물류회사는 모기업이 몰아준 일감의 99%를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제일기획(삼성) 이노션(현대차) SK마케팅앤컴퍼니(SK) HS애드(LG) 등 8개 광고회사의 수의계약 비중은 96%, 삼성SDS 현대오토에버 SK C&C 등 8개 SI회사는 78%였다.
자체 기술력이 빈약해 모기업이나 계열사에게서 받은 일감을 바로 중소기업에 넘기면서 수수료만 떼는 업체들도 많았다. SI업체 A사는 수의계약으로 계열사의 소프트웨어 도입 사업을 130억원에 수주한 뒤 다른 업체에 108억원을 주고 하도급 계약을 맺었다. 그냥 제 자리에 앉아서 수수료 명목으로 22억원을 번 셈이다. 이처럼 중간 수수료로 거액을 벌어들인 사례가 작년에만 수십 건에 달한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신영선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로 대기업 계열이 아닌 회사들의 성장 기회가 제한되고 대기업도 불필요한 비용을 지출하는 등 부작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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