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현대사 기술 방향을 두고 4개월여 동안 계속된 보수ㆍ진보학계의 논란이 일단락됐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어제 발표한 집필기준은 가급적 양측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논란의 여지를 줄이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사관(史觀)이라는 게 본래 완전무결한 합의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젠 그나마 마련된 틀을 기초로 보다 훌륭한 교과서와 좋은 현장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지난달 17일 발표한 집필기준 초안의 쟁점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과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의 문제, 이승만ㆍ박정희 전 대통령들의 '독재'를 인정하느냐의 여부였다. 보수 진영은 '자유민주주의'를 그대로 쓰고 '독재'표현은 넣지 않으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를 명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반면, 진보 진영은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쓸 것과 '독재'명기, '유일한'이라는 서술어의 삭제 등을 요구했다. 확정 집필기준은 이런 논란을 감안해 '자유민주주의' 용어의 경우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토대로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용어로 하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병기했다. 또 '장기집권에 따른 독재화'라는 표현을 써서 진보 진영의 시각을 수용했다. 반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 부분은 분명한 사실로 판단해 그대로 쓰기로 했다.
집필기준 확정과는 별개로 올바른 사관 정립을 위한 학계의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사관이 아무리 투철해도 교과서가 오류투성이거나, 교사가 사관에 진지하지 못하면 현장의 역사교육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잊을 만 하면 불거지는 오류가 되풀이되지 않게 교육당국은 교과서 검ㆍ인정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일부 교사의 경거망동은 더 큰 문제다. 흥미로운 교수법을 모색하는 건 좋다. 그렇다고 역사 수업시간에 "(박정희가) 농민 자금 빼서 삼성 지원해 준 거야"라는 식의 설익은 냉소를 주워 섬기는 건 학생들에게 독이 될 뿐이다. 이번 논란이 교사들에게도 사관의 엄중함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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