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경고 없이도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경찰 총기사용 매뉴얼' 초안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거세다. 경찰은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민사회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확정한다는 입장이지만, 경찰 총기사용 자체에 대한 시비가 적지 않다.
찬성 쪽은 경찰의 총기사용이 이미 법으로 명시돼 있고, 이번엔 단지 그 사용법을 구체화한 것일 뿐이라고 보고 있다. 총기사용 논란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데다, 총기사용 매뉴얼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것이 혹시 생길 수도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라는 입장이다.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장 경찰관에게 혼란을 야기하지 않을 정도로 구체적인 사례를 설정해 매뉴얼을 만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쪽은 "위험 천만한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흉악범죄에 노출된 경찰을 보호하고 무너진 공권력을 바로 세우는 방법으로 총기사용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3차례나 경찰의 적극적 총기사용을 언급한 조현오 경찰청장의 태도 역시 도마에 올렸다. 박주민 변호사는 "총기는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경찰장구"라며 "적극적인 대안마련 없이 총기사용만 고려한다면 무고한 죽음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이 생길 건 뻔하다"고 꼬집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 찬성/ 무능한 공권력은 불신 일으켜… 사격 훈련 강화해 피해 줄여야
지난 달 21일 인천 조폭사건을 계기로 총기 사용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경찰관이 휴대하고 있는 총기는 사용하라고 지급된 것임에 틀림없지만, 경찰관들은 총기 사용을 꺼린다. 사고가 났을 경우 짊어져야 할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총기 사용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분명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명백하게 총기를 사용해야 할 상황에서는 총기를 사용해 무고한 시민의 안전은 물론 경찰관 스스로의 안전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총기 사용과 관련된 법령에는 경찰관이 총기를 사용해야 할지 여부를 판단하기가 참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 내에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고, 위해를 수반한 총기 사용의 경우엔 '총기를 사용하지 아니하고는 다른 수단이 없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라는 사용 한계까지 정해놓았다. 다시 말해 총기를 사용하려면 범행 현장에서 경찰관은 총기 사용이 합리적이고 필요한지 또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그리고 총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지를 판단해야만 한다. 총기 사용 한계가 합리성, 필요성, 상당성, 보충성과 같이 매우 추상적이고 애매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선 경찰관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총기를 사용해야 하는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그콘서트의 '애정남'에게 질문하면 정확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경찰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고 현장 대응능력을 강화하고자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을 규정한 '상황단계별 권총사용 매뉴얼' 초안을 마련해 국가인권위원회 등 각계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만들 계획이다. 갈수록 흉포화 하는 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총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으며, 총기를 사용해야 할 때와 사용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기 위한 측면에서도 매뉴얼 제작의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한다. 뿐만 아니라 범행 현장에서 지나치게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다 보면 경찰관 본인이나 일반국민에게 더욱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으며, 무능하게 비춰지는 공권력은 일반국민으로부터 심각한 불신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의 매뉴얼 초안 중에서 몇 가지 사항은 최종안을 마련할 때 개정될 필요가 있다.
우선 '범인이 실내에 있거나 실내로 도주할 때, 주변에 폭발물 등 위험물질이 산재할 때, 다중이 밀집되어 있거나 교통이 매우 혼잡한 지역일 때는 경고사격에 보다 신중을 기하여야 하며, 실탄을 사용한 경고사격은 최대한 자제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실내에서 권총을 사용해 경고사격을 할 경우 총알이 튀면서 유탄에 맞을 수도 있고, 폭발물의 폭발 위험, 그리고 범인 이외의 제3자에게 총격이 가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실탄을 사용한 경고사격은 불허한다' 또는 '공포탄을 사용한 경고사격은 최대한 자제한다'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등을 보이며 도주하고 이의 추격이 불가능한 경우나 차량을 주행해 도주하는 경우에도 실탄이 아닌 공포탄에 의한 경고사격만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피의자 등이 흉악범이나 강력범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되는 경우 경찰관이 권총을 쏠 것을 경고하고 경고사격을 했음에도 도주를 중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실제사격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흉악범'의 기준이 모호하고, 급박한 상황에서 현장 경찰관이 흉악범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실제사격의 경우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침해를 야기할 소지가 크므로 실무현장의 경찰관에게 혼란을 야기하지 않을 정도로 구체적 사례를 설정해 매뉴얼을 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의 우려를 최소화하고 매뉴얼 작성에 따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번 매뉴얼 제작을 통해 급박한 범행 현장에서 경찰관이 우물쭈물하다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지 않도록 총기를 당당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총기의 과잉사용을 예방하기 위해서 모의사격 등을 통해 매뉴얼을 반복 숙지케 하고, 사격훈련을 강화해 범인 검거과정에서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 반대/ 영국 경찰은 총기 소지 금지, 독일·일본도 엄격한 요건 갖춰
총기는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경찰장구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사용은 신중하고 제한적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조현오 경찰청장은 5월 난우파출소에서 경찰들이 취객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후부터 이번 인천 조폭 패싸움사건에 이르기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총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지시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경찰의 무능력과 대응미비에 대한 비난이 일 때마다 총기적극사용을 지시해 마치 총기의 적극적 사용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양 몰아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는 경찰이 총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경찰의 주장처럼 총기사용을 장려할 필요가 있는지 살펴보겠다.
총기 이외 대안적 수단은 없는가. 총기를 대체할 수단이 없다면 총기사용을 권장하는 것은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이 총기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장구는 상당히 많다. 그 중에서 호신용 경봉 같은 간단한 장구도 있지만, 테이저건이나 가스총 등은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테이저건의 경우 미국 내에서만 현재까지 334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켜 그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가스총은 밀폐된 공간에서는 총기보다 위력적일 수 있다고 평가되는데, 총기적극사용이 처음 논란이 된 난우파출소의 경우 경찰이 가스총을 적절하게 사용하였다면 경찰의 무능력한 대응이 문제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총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여건이 갖추어져 있는가. 경찰이 사용하는 총기는 권총으로 정밀한 조준사격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설치된 사격연습장은 5곳에 불과해 2만 명의 경찰이 1년에 4회로 정해진 훈련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고 훈련 시 사용하는 표적도 고정표적에 불과하여 현실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은 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규정에 따라 사용하더라도 오발사고를 일으키기 쉬운 여건인 것이다.
현재까지 총기를 사용한 경찰들에 대해 불이익한 처분이 이루어졌는가. 경찰은 총기를 사용할 경우 개인에게 큰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에도 총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경찰자료에 따르면 행정적 책임측면에서 봤을 때 2003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총 36회의 총기사용 중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은 단 1건에 불과했다. 형사책임의 경우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2차례 유죄 판단을 받은 바 있으나, 경찰관을 상대로 흉기 등으로 저항이나 반항하는 등 긴급한 상황에서 총기를 사용한 경우 해당 경찰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사례는 없다.
그리고 민사책임도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 사례는 있어도 경찰 개인에게 구상권이 행사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즉, 총기를 사용한 경찰에게 책임을 지워왔기에 총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다른 나라는 총기의 사용을 적극 장려하고 있는가. 한 때 우리나라 경찰이 경쟁상대로 삼는다고 광고까지 했었던 영국경찰의 경우 일반경찰로 하여금 총기를 소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이나 일본은 총기사용과 관련해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보다 엄격하고 세분화된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나라의 경찰들이 공권력으로서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나? 그렇지 않다.
단 한 사람도 헛되이 죽어서는 안 된다. 2002년, 한 시민이 강도피해자를 구조하기 위해 현장에 뛰어갔다. 뒤 늦게 출동한 경찰은 총기를 꺼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위협했다. 피해자를 돕기 위해 현장에 온 시민은 경찰의 총기에 겁이 나 현장에서 벗어나려 했다. 경찰은 이를 추적해 뒤에서 총을 발사해 사망케 했다. 당황해서 현장을 피하는 시민과 강도를 항상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을까? 현실적 여건도, 대안적 수단의 사용도 고려하지 않은 채 총기에 대한 적극사용을 장려하면 이런 불행한 일들이 더 발생할 수 있다. 1998년 신창원의 체포를 위해 총기를 적극 사용하라는 지시가 있자 총기 사용이 갑자기 2배 가깝게 늘었다는 언론보도를 보면 답답해진다. 총기사용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단 한 사람도 헛되이 죽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박주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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