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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성격따라 역사 손질한 나쁜 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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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성격따라 역사 손질한 나쁜 선례"

입력
2011.11.0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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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사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집필기준 개정과정의 문제는 뉴라이트 쪽 사관이 반영됐다는 내용적인 면뿐만 아니라 학계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절차상 문제가 더 심각할 수도 있다. 역사학자들은 "역사 전문가들이 합의한 의견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바뀐다면 정권에 따라 역사 교육이 달라지는 나쁜 선례가 되풀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 역사학계 의견 무시된 결정

역사 교육과정을 둘러싼 논란의 된 첫 시발점도 절차의 문제였다. 교육과정 개발은 교육과학기술부 자문기구인 역사교육과정 개발 추진위원회(역추위)와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중심이 돼 진행됐다. 국편은 정책연구위의 최종안을 7월15일 교과부에 보고했고, 같은 달 19일 교과부의 사회과 교육과정 심의회는 이 최종안을 수정 없이 통과시켰다. 이때까지만 해도 교육과정에는 '민주주의'가 사용됐다.

하지만 8월9일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확정, 고시한 교육과정에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 용어가 사용됐고 이 마지막 결정과정에서 정책위는 배제됐다. 갑작스런 용어 변경은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가 교과부와 국편에 수차례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해아 한다'는 의견서를 보낸 데 따른 것으로, 역사학자들이 공식적으로 논의해 올린 개정안이 일부 학회의 건의로 뒤집어진 것이다.

이념적 차이에 뿌리를 둔 역사관의 차이는 화해가 어려운 문제일 수 있기에 더욱 의견수렴 절차가 중요하다. 하지만 학계가 의견을 모은 과정이 교과부에 의해 임의로 변경된 데 대해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다. 한국역사연구회의 이인재 회장(연세대 교수)은 "학계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교과에는 전혀 없는 역추위라는 자문기구를 만드는 등 교과부에 정치적 의도에 따라 자의적인 절차를 거쳤다"고 지적했다.

▦ "이번 정부에서 교과서 집필 끝내자" 졸속 처리

현재 학교에서 쓰이고 있는 역사 교과서는 '2007 개정 교육과정'에 맞춰 집필된 것으로 2008~2009년 집필돼 2010년 검정을 거쳐 올해부터 적용됐다. 그런데 새 교과서가 나오자마자 개정을 추진한 데에는 이번 정부에서 보수적인 시각의 교과서 집필을 끝내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그러다보니 모든 게 '초스피드'로 진행돼 2월부터 개정작업이 시작돼 8월 내용이 확정됐고, 또 다시 3개월만에 중학교 교과서 집필기준이 정해졌다. 자연히 내용도 부실이어서 중학교는 전근대사, 고교는 근현대사 중심으로 가르치던 방식을 바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통사를 초중고 과정에서 세 번 반복해 가르치도록 됐다. 고교 한국사의 근현대사 비중도 현재 80%에서 50% 수준까지 낮아졌다.

앞으로 거쳐야 할 교과서 집필과 검정은 더 큰 문제다. 새 역사 교과서를 중학교는 2013년부터, 고등학교는 2014년부터 사용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출판사들은 6개월만에 중학교 역사 상하 교과서를 만들어 제출해야 한다. 현 중학교 역사 교과서가 4년에 가까운 집필 기간을 거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초고속 집필을 감행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 확대되는 역추위의 역할 논란

이주호 장관이 역사 문제에 대한 이해를 넓히겠다는 취지로 만든 자문기구인 역추위는 탄생 때부터 국편과 역할이 겹쳐 '옥상옥'이란 지적을 받았다. 더욱이 위원장에 따라 교육과정에 교과부의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드러났다. 역사 교육과정이 임의적으로 변경됐을 때 역추위 위원들은 "역추위 입장을 회의 안건으로 올렸으나 이배용 위원장(전 이화여대 총장)에게 묵살됐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 위원장이 정치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인선 배경에 의혹을 제기했다.

교과부는 12월 확정하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 마련을 위해 현재 15명인 역추위 위원에 헌법학자, 현장 교원 등 5명 정도를 보강해 20여명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이번 개정과정에서 드러난 문제가 앞으로도 재연될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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