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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우정의 정치학

입력
2011.11.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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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의 정치학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유용했다. 주적(主敵)을 정해놓고 증오를 부추겨 퍼지게 하면, 그 대상은 힘을 잃게 된다. 역사적으로 적대의 정치학을 가장 잘 활용한 경우가 스탈린이었다. 1924년 레닌 사후 소련 지도부 내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졌을 때 스탈린은 혁명 단계별로 적을 설정하는 '주요 타격 방향'이라는 논리를 창출, 정적들을 제거했다. 먼저 카메네프, 지노비예프와 연대해 트로츠키를 축출한 후 다시 부하린과 손잡고 카메네프와 지노비예프를 제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하린마저 쫓아냈다. 조그만 차이나 잘못도 용납하지 않고 부풀려 증오의 대상으로 만들어 제거한 것이다.

적대의 정치학은 이념논쟁이 수반되는 공산주의 국가의 권력투쟁에서 주로 사용됐지만, 미국 등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윤색된 형태로 자주 등장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을 필두로 보수세력은 '색깔이 불안한 노무현' '무능한 민주화 세력'이라는 틀로 융단폭격을 가했고, 국민들도 그 논리에 점차 빠져들었다. 그 결과 500만 표라는 사상 최대 표차로 이명박 정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증오를 부추기는 적대의 정치학

이제 야권과 진보세력이 거꾸로 적대의 정치학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살기는 어렵고,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불만과 불안심리는 퍼지기 마련이다. 여기에다 강부자ㆍ고소용 내각에서 출발, 측근ㆍ회전문 인사로 이어지는 무감각, 측근 비리와 내곡동 의혹 속에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오만함이 겹쳐지면서 정권을 향한 분노가 커지게 됐다. 적대의 정치학은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기에 단발적인 네거티브보다 훨씬 파괴력이 크다. 지난 서울시장 보선에서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가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도 이미 적대의 정치학에 따른 증오가 범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내년 총선에서도 재연될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쇄신 논의가 나오지만 근본적으로 변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또 당장 국민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게 하는 묘책도 없다. 그러나 내년 대선은 예측불허다. 진보세력이 적대의 정치학으로만 이기기에는 만만치 않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척점에는 야권과 진보세력뿐만 아니라 박 전 대표도 서 있는 것이다. 불만과 분노의 상당 부분이 야권으로 가지만, 박 전 대표에게도 일정 부분 옮겨가고 있다.

진보세력과 야권이 통합에 전력을 다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민주당, 혁신과 통합, 시민사회세력, 민노당, 진보신당 등의 이념과 노선, 정책에 차이가 적지 않은데 이를 하나로 묶을 명분이나 논리가 군색하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우정의 정치학이 나온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영향을 받은 '코뮨주의' 학파가 제기한 이 개념은 야권 통합의 논리적 토대를 구축해주고 있다. 이 틀은 한마디로 나라를 잘못 이끌고 있는 '공적(公敵)' 앞에서는 사소한 차이는 극복되고 용인돼야 한다는 것이다. 적대의 정치학은 동일세력 내에서도 분열과 투쟁을 야기하지만, 우정의 정치학은 이질적인 그룹도 동지적 관계로 묶을 수 있다.

야권통합 토대, 우정의 정치학

만약 야권과 진보세력이 우정의 정치학을 통해 통합한다면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색깔론' 등 적대의 정치학을 구사하려 해도 현재의 삶이 곤궁한 국민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세력이 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략은 초월의 정치학이다. 영남 패권주의를 벗어 던지는 지역 초월, 안보는 보수지만 복지는 진보에 가까운 이념 초월, 기업과 부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탐욕 초월 등 스스로를 깨는 초월적 쇄신을 해야 할 것이다. 박 전 대표가 복지와 고용에 적극적이고 남북문제에서 고민을 거듭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내년 대선은 우정의 정치학과 초월의 정치학이 맞붙는 격렬한 전장이 될 것이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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