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문지방의 흙을 침 묻힌 손가락으로 핥아먹던 아이가 돌아본다 눈이 빨간 아이여 아직 떠나지 않은 나여 아이를 때리던 손바닥은 어디 갔나
너무도 깊이 묻혀 아직도 돌 밑에서 꿈틀거리는 분홍빛 손톱이여 젖꼭지 위에 얹혀지던 그 옛적의 이빨이여
도대체 우리 엄마 아기집은 왜 아직 안 열리나, 이다지도 질기냐
오늘 밤 저 하늘 콜타르 검은 천장이 티베트 사람들 검은 천막처럼 펄럭이고 울면서 빠지는 소금맛 별이여 밤마다 더 달여지는 온몸에서 진동하는 짠내여 빨리 나가자고 나를 찔러대는 빨간 송곳이여
● 11월이면 곱게 부풀어 오른 봉숭아 꽃잎이 떠오릅니다. 꽃이야 한여름에 피지만 첫눈 올 때까지 조바심치는 누군가의 손톱에 남아 있거든요. 봉숭아는 지나간 날들을 불러내는 꽃이지요. 시인은 반달같이 희고 흐린 손톱에 꽃물을 들이며 어린 시절을 쏟아냅니다. 침 묻은 내 어린 손가락을 쥐고 꽃물을 들여 주시던 어머니, 할머니. 그 손에 맞기도 많이 맞아 눈이 빨개지도록 종일 울었는데요. 어디로들 가셨나? 아직도 나는 안 열리는 아기집을 가까스로 비집고 세상에 내려오려는 아기같이 어리둥절한 마음인데… 버스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손톱을 만지작거리는 소녀를 보며 궁금해집니다. 지금이라도 빨갛게 물들인 손가락으로 소금 맛 별을 가리키면 첫사랑이 돌아오려나요? 봉숭아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소녀여, 그 어여쁜 손톱으로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오래전 기억들이 모두 쏟아져 내릴 것 같아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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