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앞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이야기의 입자가 저절로 달라붙었다"(소설집 <개그맨> 의 작가 후기')는 말마따나 소설가 김성중(36)씨는 뒤늦게 이야기의 마법에 걸린 모양이다. 개그맨>
2008년 서른 셋의 나이로 등단, 최근 첫 소설집을 묶어낸 신인 작가지만 그가 쏟아낸 단편들은 리얼한 세태 풍자에서 환상적 알레고리까지 스타일의 변환이 무애자재(無碍自在)의 경지에 오른 듯 막힘 없다. 활발한 상상력으로 다채로운 이야기 세계를 보여주는 그의 거울을 일러 문학평론가 우찬제씨는 '역동적인 허공의 만화경'이라고 부른다.
작품만큼이나 작가의 입담도 거침없다. "중구난방이란 얘기도 들었는데, 제 경향을 저도 잘모르겠어요. 머리 속에 떠오른 이야기에 가장 잘 맞는 톤과 문체, 분위기를 생각해서 거기에 맞게 쓰거든요. 무엇보다 작가로서 '종이 위의 자유'를 최대한 누려 보자는 생각이에요. 작품을 쓰면 별별 사람이 다 될 수 있고, 세상 종말이나 창세도 만들 수 있잖아요. 그 모험을 다 즐겨보고 싶어요."
계간지 창작과비평 2010년 겨울호에 발표된 '허공의 아이들'은 땅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모든 것들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사람들의 생명은 투명하게 증발하는 환상적 종말의 세계를 다룬 작품. 의미심장한 것은 주인공인 소년과 소녀는 이 종말적 상황에서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멸망 직전의 세계에서도 소년의 성장판은 닫히지 않았고, 소녀는 달거리를 거르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질문은 이런 것, "사라지는 세계에서 성장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다. 땅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 소년이 또 다른 소리를 들으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뼈가 자라는 소리다. 환상적 세계를 무대로 하지만,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젊은 세대가 처한 현실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뼈 아프다.
작품에 녹아 있는 이런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이 작가적 신념과도 맞닿아 있다. 이것 저것 다 도전해보고 싶다면서도 작가는 "어떤 것을 쓰든 당대와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월가 점령 시위대. "겨울이 다가오는데, 시위대가 어떻게 겨울을 맞을지 궁금하다"는 그는 "당장 글이 돼서 나오지는 않겠지만, 지금 시대가 뭔가 굉장히 변화하는, 유동적인 시대인 것 같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 학교 다닐 때 책 속에서 보던 얘기들, 이를테면 68혁명 같은 것들이 우리 세대에 가능할까 싶었는데, 그런 일들이 지금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것 같아요."
이야기꾼의 기질이 남다른 이 작가에게 격변의 이 시대가 더 없이 안성맞춤인 듯 보였다. "도처에 공부하고 고민할 거리가 많아요. 정말 플랑크톤 많은 바다처럼 이야기가 둥둥 떠다니는 시대라는 느낌이에요. 이걸 다 받아 적지 못해 아쉬울 정도로."
명지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온 그는 잡지사 기자를 4년 정도 한 뒤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만화 스토리나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쓰고, 사보 취재도 하는 등 여러 일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는 "20대 때는 실패의 연속이긴 했지만, 기자 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났던 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냐는 물음에 그는 "추구하는 세계가 있긴 하지만, 지금 내 입장에서 얘기하면 서툴러질 것 같다"며 "10년 쓰고 말해 주겠다"고 했다. 그의 10년 뒤가 기대된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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