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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다 질' 서울 동산초교의 독서 비법/ 고전은 어렵다? 편견 깨주니 만화책보다 재미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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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다 질' 서울 동산초교의 독서 비법/ 고전은 어렵다? 편견 깨주니 만화책보다 재미있다네요

입력
2011.11.0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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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돈 들여서 구입한 세계문학전집은 장식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에요." "우리 애는 책을 좋아하긴 하는데 맨날 만화책 아니면 판타지 소설만 읽어서 걱정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가 책을 가까이하길 바란다. 하지만 "책 좀 읽어라"고 잔소리만 늘어놓을 뿐 정작 어떤 책을, 어떻게 읽혀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만 하다. 책은 무조건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 전 학년을 대상으로 고전읽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 동산초교의 송재환 교사는 "양보다 질을 따져야 독서의 효용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단언한다. 초등학생에게 고전은 어렵지 않을까 주저하는 부모들을 안심시켜줄 고전읽기의 비법을 들어봤다.

고전을 '공부'하는 아이들

4일 오전 9시, 1교시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동산초 6학년 1반 아이들 28명은 요지부동이다. 등교하기가 무섭게 <플라톤의 대화> 를 펼쳐 들고 독서삼매경에 빠져든 지 벌써 20분째. 동산초는 올해부터 한 달에 한 권씩 고전을 선정해 매일 아침 정해진 분량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책은 인문ㆍ철학ㆍ문학ㆍ과학 등 분야별로 골고루 아이들 수준에 맞게 학년별 선생님들끼리 협의해 결정했다.

이날 아이들이 읽은 부분은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혀 있는 소크라테스와 탈옥을 설득하러 찾아간 크리톤 사이의 대화. 5쪽 분량이지만 아이들은 '다수의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인가', '사회규범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묵직한 주제를 뽑아내 자유롭게 토론했다.

"대중의 이야기보단 소수의 전문가 의견을 따르는 게 진리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저를 비롯해 반 아이들 대부분이 아무렇지 않게 욕을 하는데 잘못된 행동인 줄 알면서도 '남들 다 하니까 괜찮아'라며 변명했던 모습을 반성합니다."

송재호 학생의 명쾌한 자기반성에 디른 아이들이 뜨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발표하면서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면 국어사전을 들춰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만화책이나 판타지 소설과 달리 고전은 교과서처럼 공부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고전은 어렵다는 편견을 버려야

송 교사가 처음 고전읽기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많았다. 가뜩이나 책을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어른이 읽기에도 두껍고 어려운 책을 억지로 읽혔다가 아예 독서에 대한 거부감만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다수였다. 하지만 송교사는 부모들부터 고전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고전은 어렵다는 막연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한번 고전을 읽은 아이들은 800쪽이 넘는 두꺼운 책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고전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겐 우선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지 동기부여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플라톤의 대화> 야말로 서양철학을 집대성한 책이다" 등등 자신이 읽는 책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가 있는지 짚어주거나 나중에 대입 논술이나 면접에서 유용하다는 현실적인 조언까지 곁들이면 아이들은 더욱 솔깃해한다. 책을 읽는 분량은 문학을 제외하곤 하루에 10쪽을 넘지 않게 했다. 너무 많은 양을 한꺼번에 주입하면 금방 질리기 십상. 또 아이들의 이해력을 높이고자 똑 같은 부분을 세 번 이상 정독하게 한다. 먼저 줄거리를 파악하고, 둘째로 감명 깊은 구절이나 문장을 찾고, 마지막엔 스스로 질문거리를 생각하며 읽게 한다. 책 특성에 맞는 독후활동을 진행하는 것도 아이들의 흥미를 돋우는 비법이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을 읽고 햄릿 연극 경연대회를 열거나 <오만과 편견> 을 읽으며 영화도 함께 보여주는 식이다.

성적뿐 아니라 인성도 향상

효과는 컸다. 우선 아이들의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지난 6월 실시한 전국사립초등학교평가에서 송 교사의 반 학생들은 국어과목 평균 95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고,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에서도 이 학교 6학년 전체 학생 중 국어과목 '우수'가 80% 이상으로 '기초'나 '기초미달'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송 교사는 고전읽기의 장점으로 ▦지적 자존감 향상 ▦자기주도학습 습관 ▦인성교육 등을 꼽았다. 학부모 안미순씨는 "원래 만화책을 좋아했던 아이가 이젠 서점에 가도 자연스레 인문철학 코너로 발길을 옮긴다"며 "책을 고르는 안목이 높아진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말끝마다 짜증을 내며 반항하던 아이가 소인은 남의 탓을 하고 군자는 자기 탓을 한다는 논어 구절까지 인용하면서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뿌듯해했다.

TV부터 끄고 하루에 30분씩

집에서 아이와 함께 고전읽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다. 일주일에 2~3번 30분씩이면 족하다. 다만 아이 혼자 책을 읽게 해선 아무 소용이 없다. 부모는 옆에서 TV를 보면서 아이에게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면 반발심만 는다.

도서를 선정할 때는 초등 눈높이로 나온 책이나 만화로 된 고전은 되도록 피하고 완역본을 추천한다. 어설프게 내용을 요약하고 쉽게 바꾼 책으론 온전한 고전의 효과를 볼 수 없다.

또 조금씩 천천히 읽히는 게 중요하다. 아이가 얼마나 빨리 읽었느냐 칭찬해주지 말고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어디까지 읽었니?''주인공은 누구니?'와 같은 1차원적인 질문에서 벗어나 '주인공이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등등 아이의 사고력을 넓혀주는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한 문단씩 번갈아 가며 소리 내어 읽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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