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의 제로. 카드설명서가 제로일정도로 단순화한 조건과 혜택. 그리고 디자인. 만들고 보니 딱 스티브잡스 취향입니다."(지난달 말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트위터)
상품이 나오기 전부터 정 사장이 최대 역작으로 평한 '제로(ZERO)카드'가 빗장을 풀었다. 제로카드는 전달 이용실적, 할인 한도 및 횟수, 심지어 가맹점에 상관없이 업계 최고 수준인 최대 1.2%의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고객이 할인 받은 금액만큼 현대카드가 상점에 지불하는 구조다. 아무 조건 없이 카드를 쓸 때마다 혜택을 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카드대란 이후 업계 불문율과도 같았던 '포인트 선(先) 적립, 후(後) 사용'의 틀을 깬 파격적 행보다.
때문에 업계에선 "카드사들의 부가서비스 과당 경쟁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0년대 초반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시 치열한 고객 확보 경쟁에 나선 카드사들은 연회비가 공짜인데도 놀이동산 이용권 50% 할인 등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카드를 남발했다. 자연스레 이용실적은 없으면서 혜택만 챙기는 '체리피커족'이 급증했고, 이는 카드사들의 영업적자를 부추겨 직ㆍ간접적인 카드대란의 주범이 됐다. 이런 악재를 겪은 후에야 카드사들은 금융당국의 과당경쟁 억제 방침 아래 연회비 및 전월 실적 기반의 할인 혜택 등을 의무화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현대카드의 제로카드는 회사가 할인액을 전액 부담하는 구조라 수익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며 "하지만 이 카드가 흥행에 성공할 경우 경쟁사들이 앞다퉈 비슷한 카드를 선보이는 등 제살 깎아먹기 경쟁에 나서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카드는 상품 특성상 고객들 반응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데, 업계 2위인 현대카드가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제로카드를 내놓음으로써 시장점유율 확대에 촉각이 곤두서 있는 후발주자들에게 자극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신용카드 부가서비스 혜택을 축소하고 체크카드를 육성하려는 정부의 정책 기조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이 가계 빚의 한 원인이라고 판단, 신용카드 사용을 억제하고 계좌 잔액 범위 내에서 쓰는 체크카드를 활성화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체크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1%대로 내리고, 내년부터 체크카드의 연말소득 정산 혜택을 더 늘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현대카드 측은 "제로카드의 평균 할인율을 1%라고 보면, 이용액 100만원일 때 회사는 1만원만 부담하는 셈"이라며 "실제 할인 폭이 크지는 않다"고 반박했다.
금융당국은 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카드사의 과도한 마케팅비용 집행에 대한 감시는 개별 상품마다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각 카드사의 전체적인 마케팅 규모를 기준으로 한다"며 "제로카드 하나만 놓고 평가하긴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금감원의 이런 태도가 이율배반적이라고 지적한다. 하나은행은 2007년 금감원이 자사의 '하나마이웨이카드'에 대해 "부가서비스가 은행 카드부문의 수익을 해칠 만큼 과도하다"고 지적하자, 출시 2개월 만에 발급을 중단한 바 있다. 때문에 카드사 간 경쟁이 다시 과열된다면 금융당국도 마냥 외면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無)조건 무한혜택'을 앞세운 제로카드의 앞날이 주목되는 이유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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