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체국(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은 단순한 우체국(郵遞局)이 아니다. 예금 및 보험 수신규모가 무려 70조원에 달하는 금융권 공룡이다. 금융점포 수만 2,800여개에 달해 은행, 증권사 등의 제휴 구애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우편 업무를 위해 설립된 정부 기관이 금융부문 몸집을 지나치게 부풀리는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우체국 금융은 일반 금융기관과는 달리 금융당국의 감독에서 자유로운 '규제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우체국은 금융권 공룡
9월 말 현재 우체국 예금의 잔액규모는 59조2,588억원. 작년 말 50조3,650억원에 비해15%(8조8,900억원)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국내 18개 은행의 평균 수신증가 규모가 3조5,0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우체국 예금 증가세가 시중은행보다 2배 이상 가파른 셈이다. 우체국 보험까지 포함하면 수신규모는 70조원 안팎에 달한다. 민영 금융기관이 5,000만원 한도 내에서 예금자보호를 받는 것과는 달리, 우체국은 금액 한도 없이 국가가 지급을 책임지기 때문에 저축은행 사태 등 금융불안 상황에서 수신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체국 금융의 강점은 무엇보다 일반 금융기관보다 월등히 많은 금융점포와 자동화기기 수에 있다. 전국의 우체국은 3,700여개. 이 가운데 금융업무를 담당하는 점포가 2,763개, 자동화기기는 5,671대나 된다. 더욱이 이들 점포는 읍, 면 단위까지 진출해 고객 접근성이 뛰어나다. 점포 수만 보면 350여개 안팎인 외환은행의 7배를 넘으며,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의 2배 이상이다.
때문에 금융기관은 물론 기업들까지 우체국에 구애의 손을 뻗치고 있다. 10월 말 현재 우체국은 시중은행, 증권사, 카드사, 통신사, 신용평가사 등 166개 기관과 ▦창구망 공동이용 ▦카드업무 대행 ▦증권계좌 개설대행 서비스 등 18개 업무에서 제휴 관계를 맺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우체국 네트워크를 활용해 농어촌 구석구석까지 연결되기 때문에 다른 금융회사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제휴를 원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규제 사각지대 논란
우체국은 지식경제부 산하 정부기관이다. 사실상 정부가 예금 및 보험 업무를 운영하다 보니 민영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체계에서 벗어나 있다. 감사원 감사와 국정감사, 자체 감사 등을 통해 건전성 감독을 한다지만, 금융감독 당국이 일상적으로 들여다보는 일반 금융회사보다 취약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우체국의 경우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인데다 일반 금융사들이 납부하는 법인세, 교육세 등도 면제받는다"고 말했다.
최근 우체국 금융의 감독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이다. 한미 FTA는 금융부문의 규제를 일원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적용하면 우체국 금융도 금융당국의 규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외교통상부는 "한미 FTA에서는 우정사업본부가 금융기관이 아니라 정부기관임을 확인해 금융챕터의 적용을 배제했다"며 "우정사업본부는 FTA 발효 후에도 우체국 보험 등에 대한 규제 권한을 계속 보유한다"고 밝혔다.
우정사업본부 측도 금융당국의 감독체계 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2005년 말 우체국예금ㆍ보험법 개정, 금융감독원과 양해각서(MOU) 체결 등을 통해 지금까지 순차적으로 건전성 감독을 민영 은행 및 보험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해 왔다"고 주장했다.
결국 논란을 잠재우려면 우체국의 우편업무와 금융부문을 분리(혹은 민영화)할 수밖에 없다. 여당인 한나라당이 지난 대통령 선거와 총선 때 우체국 금융부문 분리 공약을 내걸었지만, "분리할 경우 손실만 늘어가는 우편 업무에 막대한 세금이 투입될 것"이라는 논리에 잠잠해진 상황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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