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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전사(戰士) '스모킹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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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전사(戰士) '스모킹 조'

입력
2011.11.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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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종합격투기가 가장 인기 있는 투기(鬪技)지만 예전엔 단연 권투였다. 특히 1970년대엔 축구 빼곤 모든 프로스포츠 중에서 권투 이상 가는 인기종목은 없었다. 당시 권투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헤비급 트리오가 무하마드 알리, 조지 포먼, 그리고 조 프레이저였다. 알리는 프레이저에게 잡히고, 포먼은 프레이저를 눕히고, 알리는 포먼을 꺾는 등 물고 물리는 이들의 경기는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세기의 대결이었다. 10년쯤 뒤 레너드, 헤글러, 헌즈가 미들급 안팎에서 비슷한 3자 라이벌 시대를 재현했으나 무게감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 알리는 날아다니듯 현란한 테크닉으로 링을 평정했고, 포먼은 일발필살의 피괴력으로 상대를 뉘었다. 자질을 타고난 이들에 비해 프레이저는 아예 헤비급 복서가 되기 힘든 신체조건을 지녔다. 180cm 남짓한 키에 짧은 팔, 게다가 왼쪽 팔은 어릴 때 사나운 농장 돼지에게 쫓기다 다쳐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다. 악조건을 그는 지독한 훈련으로 극복해냈다. 끊임없이 몸을 상하 좌우로 흔들며 상대 턱 밑까지 바짝 붙는 경기스타일은 짧은 팔의 핸디캡을 의식한 것이었다. 펴지지 않는 왼쪽 팔로는 주무기인 각도 예리한 레프트훅을 만들어냈다.

■ 애칭 '스모킹 조(Smoking Joe)'는 그의 화끈한 복싱 스타일로 얻어진 것이다. 75년 알리와 세 번째 맞붙은 '마닐라 대회전'은 프레이저 권투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 경기로 기억에 선연하게 남아 있다. 1승1패에서 둘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경기를 벌였다. 알리의 스트레이트에 눈이 감긴 상태에서도 프레이저는 불 맞은 황소처럼 쉼 없이 파고들며 주먹을 날렸다. 결국 15라운드 시작 전 프레이저 측에서 타월을 던졌다. 알리는 경기 후 죽음에서 간신히 살아나온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평생 알리가 유일하게 인정한 상대가 그였다.

■ 복귀한 알리와의 첫 대결을 앞두고 미 언론들이 "떠버리와 권투선수가 맞붙으면 과연 어떻게 될까?"라고 표현했을 만큼 그는 진정한 복서였다. 파란만장한 전적의 길지 않은 챔피언이었지만 그는 조 루이스, 로키 마르시아노 등 전설들과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헤비급 복서 10명'(IBRO 선정)에 올라 있다. 영원한 불굴의 전사(戰士)일 것 같았던 조 프레이저가 간암으로 최후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불 같은 열정과 투혼으로 어려운 시절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었던 시대의 영웅 또 한 명이 이렇게 스러져간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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