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 해금, 철가야금에다 창(唱)까지 하니까 학교 나와서도 할 일이 많습니다. 작곡, 특강, 해외 공연도 제 몫이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김영재(64) 교수의 새 무대는 여태껏 숱하게 해 온 공연과 조금 다르다. 국악 인생 50주년에다 내년 정년을 앞두고 펼치는 회심의 한마당이다. "요만치도 한눈 판 적 없이, 평생 해 온" 마음의 벗들을 불러 모은 이 자리를 그는 '열락풍류(悅樂風流)'라 이름했다.
사비를 털어 1991년에 완성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국악 상설무대 '우리 소리'에서 거문고를 타며 그는 장기인 창을 곁들였다. 오른손에 쥔 술대로 현을 퉁기고, 골무를 낀 왼 손가락으로는 "공글리고 짓눌러" 소리를 빚어 올렸다. 오동나무(앞판)와 밤나무(뒷판)로 만들어진 울림통이 만들어내는 음이 현묘하다. 원래 선비들이 책 옆에 항상 세워두고 뜯던 악기였다.
"열다섯 살부터 인사동 국악예술학교에서 신쾌동에게 배움을 시작한 지 17년 세월"이 문득 살아 오는 자리다. 백낙준으로부터 신쾌동을 거쳐 이어지는 정통 거문고의 계보가 그의 몸에 각인돼 있는 것이다. 스승의 아들이 아파 졸지에 대가 끊길 뻔했으나, 그가 메우고 북돋운 셈이다. 명절 때면 모란공원에 모셔진 스승의 묘에 참배하는 것은 스승에 대한 감사이자 정통에 대한 확인이다.
"장학금 준다 해서" 들어간 국악예술학교는 천국이었다. 방마다 명인들이 있었다. 성금연, 이창배 등 전설적 인간문화재한테서 각각 가야금과 민요를, 홍원기에게서는 가곡ㆍ가사ㆍ시조를, 교장이던 박헌봉에게서는 이론을 배웠다. "국악 하던 학생이 거의 없어 학생보다 선생이 많았어요." 박초월, 김소희, 박녹주, 박귀희 등 쟁쟁한 대가들이 교사로 진을 치고 있었고, 한국일보와 삼성의 사주였던 장기영, 이병철 등 "풍류를 알던 분들"이 독지가로 나서던 때였다. 그에게 또 다른 명인의 이름을 붙여준 지영희류의 해금 역시 열다섯 살 때부터 배웠다. "나는 악가무(樂歌舞)를 다 배운 마지막 세대", "민속(민속 음악 장르)은 혼자 다 했다"며 그는 수학 시절을 돌이켰다. 그 모두가, 이번 자리를 위해 필요했던 기나긴 준비였던 셈이다.
50주년 기념 무대는 그가 연주나 소리로 직접 등장하는 자리와 제자들의 헌정 무대 등이 어우러져 있다. 장구와 함께 하는 거문고 병창 '팔도유람가', 한누리무용단의 춤이 따르는 '철가야금 산조' 등에서는 연주자로 나선다. 삼현육각보존회의 반주로 그가 펼쳐 보일 '춤-회상'은 승무 탈춤 등 소싯적부터 익혀온 우리 춤의 고갱이를 모아 엮은 것이다.
한편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와 '김영재류 해금 산조', 악기 연주와 춤이 함께 펼쳐지는 '탈놀이와 악가무' 등 20여명의 제자들이 꾸미는 헌정 공연은 그의 예술이 현재 도달한 지점을 보여준다. 이 공연에 맞춰 그동안 작곡한 작품을 정리한 CD '김영재 거문고 창작집', 독주로 들려주는 시나위 연주집 등도 발표된다. 10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 (02)564-0269
장병욱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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