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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의 시네마니아] 사연많은 엔딩 크레딧 "OO 에게 바칩니다"

입력
2011.11.0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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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멋진 늙은 떡갈나무, 내 아버지 엑토 곤살레스 가마에 바칩니다.' 스페인 멕시코 합작영화 '비우티풀'의 화면을 닫는 문구다.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아버지를 향한 애틋한 정이 느껴지는 이 문구는 영화의 주인공 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의 인생과 절묘하게 공명을 이루기도 한다.

어린 딸과 아들의 손을 잡고 걷는 욱스발의 모습은 넉넉한 품을 지닌 떡갈나무와 다름없다. 비록 비루한 인생을 이어왔지만 삶의 마지막 1초까지 아이들을 위해 바치는 욱스발의 비감 어린 최선은 눈물을 자아낸다. 욱스발이 눈을 감은 뒤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영혼과 만나는 곳도 나무들(아마도 떡갈나무)이 빽빽한 눈 덮인 숲. 곤살레스 감독은 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함께 영화가 말하려 한 부성의 본질을 영화를 마칠 무렵 그렇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들이 영화의 앞뒤 스크린에 투영하곤 하는 '…에게 바칩니다' '…에게 감사합니다'는 문구는 단순한 인사치레 이상의 역할을 한다. 때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인에 대한 사랑 고백을 담기도 하고, 감독의 영화적 지향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740만 관객을 모으며 올해 최고 흥행작 자리를 지키고 있는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은 장편 데뷔작 '극락도 살인사건'의 말미를 조금 이색적으로 장식했다. 도움 주신 분들 명단에 그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을 올렸다. 연출에 직접적인 조언을 주거나 장소 협찬을 해준 사람들의 이름으로 가득한 여느 영화들의 엔딩 크레딧과는 사뭇 다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와 부산영화제를 찾았던 이란영화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의 감사 인사는 처연하기만 하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는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심정을 아이폰 등으로 절절하게 전하는 작품이다. 파나히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내용을 영화에 담았다는 이유로 지난해 12월 이란 법정으로부터 징역 6년과 20년간의 영화 연출 금지 선고를 받았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는 영화를 만들 경우 파나히가 더한 처벌을 받을 수 있기에 제목부터 스스로 영화가 아님을 강조한다. 파나히는 엔딩 크레딧에 연출(Directed By)이라는 말 대신 노력(Effort)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기도 한다. 헌정의 대상도, 감사 인사의 대상조차도 'XXXX'로만 표기했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감독의 세심한 배려와 이란 당국을 향한 신랄한 비판이 담겨있다. 아마 영화 역사상 가장 서글프고도 기이한 엔딩 크레딧이 아닐까.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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