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없고 흔들리고 경계에 있는 사람들, 그런 이들에 관심을 갖고 써왔어요. 제 세대가 그래서인지…."
정처 없이 흔들리고 떠도는 이들의 상처에 다가가 그들을 어루만지고자 하는 것은 문학 고유의 사명일 터이다. 소설가 조해진(35)씨는 그 소명을 뿌리까지 밀고 가는 것 같다. 주제의식뿐만 아니라 문장 역시 범상치 않다. 마음의 살결을 부비는 듯한 그의 문장을 읽다 보면 정말 타인의 미열이 타고 오는 듯해서다. 어쩌면 슬며시 흘러 내린 눈물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지난 4월에 나온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창비 발행)는 문학이란 그렇게 상처 받은 이들간의 마음의 터치임을, 섬세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직접적으로 다루는 소재는 탈북자이지만 주제는'타인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마음의 겹쳐짐에 대한 오래된 물음이다. "연민이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중략)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그 감정이 거짓 없는 진실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포기되어야 하는 것일까"(48쪽) 로기완을>
작품은 방송작가인 '나'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한 탈북자의 자취를 쫓아가는 과정을 기본 골격으로 한다. 주인공이 대결하고자 하는 것은 '연민이란 자신의 현재를 위로 받기 위해 타인의 불행을 대상화하는, 철저하게 자기 만족적인 감정'(52쪽)이라는 가식적 동정이다. 불우이웃의 사연을 소개해 후원을 받는 TV프로그램의 방송작가인 나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했지만, 출연자인 여고생 환자 윤주가 위험에 처하면서 방황을 시작한다. 후원금을 늘리고 싶은 나의 욕심으로 방송 날짜를 추석 연휴로 미룬 사이 윤주의 종양이 악성으로 바뀐 것이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나는 우연히 잡지에서 읽은 탈북자 L의 기사를 보고 그의 흔적을 찾는 여정에 나선다.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라는 L의 인터뷰에 담긴 그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의 추적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는 탈북자 L은 함경북도 온성군 세선리 제7작업반에서 태어난 스무 살 청년 로기완. 가난을 피해 어머니와 함께 중국으로 넘어왔던 그가 유럽까지 오게 된 것은 바로 어머니의 죽음 덕분이다. 밀입국 비용이 실은 교통사고로 숨진 어머니의 시신을 팔아 마련한 돈이었다.
소설의 빛나는 부분은 화자가 로기완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과정을 절제된 감정이입으로 그리는 대목으로, 이를 통해 이니셜 L에 지나지 않던 한 탈북자는 로기완이란 고유한 존재로 거듭난다. 작가의 질문이라 할 연민이란 것도 바로 타인의 고유성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란 깨달음이 담겨 있다.
소설의 모티프가 된 탈북자 L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2004년 등단한 후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어 강사생활을 하던 조씨는 2008년 폴란드의 한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당시 국내 주간지에서 탈북자에 대한 기사를 읽은 그는 무작정 벨기에로 떠났다."처음부터 뭔가 쓰겠다는 생각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는 그는 L이 묵었던 허름한 호스텔의 쓸쓸하고 추운 방을 보는 순간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고 한다.
"여백이 있고 상상의 여지가 있는 문장을 좋아한다"는 그는 "나이가 들면 깊은 여운을 주는 에세이 같은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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