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삼성 오승환(29)의 희생은 '독'이 됐다.
7일 열린 2011 프로야구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시상식은 당초 오승환과 최형우, KIA 윤석민의 3파전으로 점쳐졌다. 선발 투수로 4관왕에 오른 윤석민이 비교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한 시즌 최다 세이브 타이기록(47세이브)을 수립한 오승환이 불펜 투수로서의 고충을 호소하면서 동정 여론이 일었다.
타격 3관왕을 차지한 최형우 역시 '방출 신화'를 썼다는 점에서 표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삼성이 둘의 활약을 앞세워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 때 MVP의 주인공은 예측 불허로 전망됐다.
그러나 삼성이 한국시리즈 종료 다음날, '후보 단일화'를 거론하면서 일이 묘하게 돌아갔다. 오승환과 최형우의 집안 싸움에 표가 분산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85년 전ㆍ후기 통합 우승을 차지한 삼성은 이만수와 장효조 등의 팀 내 경쟁으로 표가 엇갈려 해태 김성한에게 MVP를 내 준 아픈 경험도 있다.
이에 오승환이 팀 후배를 위해 용단을 내렸다. 지난 3일 오승환은 "후배 최형우를 위해 MVP 후보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삼성 구단도 보도자료를 통해 사상 초유의 MVP 후보 사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야구기자회는 "MVP 후보는 선거처럼 입후보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을 기준으로 선발위원회를 통해 뽑힌 것이다. MVP 투표에서도 당연히 후보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투표를 앞두고도 KBO와 기자회는 투표인단에 이 같은 사실을 재차 강조했다. 이날 오승환은 다소 민망한 표정으로 시상식장에 들어섰고, 투표지에도 변함없이 이름이 올랐다. 반면 선배의 희생에 최형우는 다소 들뜬 표정으로 떨리는 마음을 고백했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는 결과적으로 자충수가 됐다. 사퇴를 선언했던 오승환은 오히려 19표를 받았고, 최형우는 고작 8표를 얻는 데 그쳤다. 한국시리즈 종료 때만 하더라도 삼성에 분산됐을 표는 윤석민에게 몰표로 이어졌고, 나머지 표마저도 오히려 오승환을 지지한 사람이 더 많았던 것이다. 표심을 통해 '후보 사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삼성과 오승환에게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셈이었다.
나란히 수상에 실패한 오승환과 최형우는 씁쓸한 표정으로 행사장을 빠져 나갔고, 우승팀 삼성 역시 멋쩍기는 마찬가지였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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