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산건설이 수백 억원에 이르는 OCI(옛 동양제철화학) 구주권(본보 7월 19일자 8면)을 10년 전 처분하려 했던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벽산건설의 누군가는 이 주식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1998년과 지난해 기업개선절차(워크아웃) 대상에 선정될 정도로 자금난에 시달리면서도 현금화가 가능한 주식을 20년이나 끌어안고 있었던 벽산건설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OCI 구주권으로 벽산건설에게 100억원을 챙기려 한 A씨 일당에 대해 지난달 말까지 인천지법에서 열린 5차례의 공판 내용을 종합하면 OCI의 구주권이 벽산건설 소유가 된 시기는 1990년 4월이다. 당시 정우개발(2000년 벽산건설에 인수합병)이 호주에 본사를 둔 C사에 400만 달러를 주고 구주권 80만6,400주를 매입했다. 정우개발 법정관리인이었던 김모 전 벽산건설 부회장은 "정우개발 인도네시아 지사 통장에서 대금을 송금했고, 구주권은 인도네시아에 보관했다"며 "회계정리가 되지 않아 주식명의개서를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 시기 정우개발은 법정관리 중이었고, 법원이 승인한 주식거래한도는 22억원이라 400만 달러(당시 환율로 28억여원)를 주고 구주권을 샀다면 그 자체로 법 위반이다.
2001년 11월 김 전 부회장 등은 외국계 페이퍼컴퍼니 H사를 만들어 OCI를 상대로 주식 명의개서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H사가 C사와 주식매매를 했다는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구주권은 20년 간이나 벽산건설 소유로 있었지만 회계 장부에 자산으로 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김 전 부회장을 포함한 서너 명만이 주식의 존재를 알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A씨 일당이 다른 구주권을 들고 나타난 지난해 벽산건설은 부랴부랴 100억원(현금 10억원+어음90억원)을 주고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구주권을 OCI 신주권으로 교환한 벽산건설은 지난해 6월 16~18일 약 650억원에 주식을 모두 매각했다. 벽산건설 관계자는 법정에서 "2005년 인도네시아 법인 정리 과정에서 구주권을 발견해 회계팀 책상 아래 보관해 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벽산건설 측은 주식매매계약서 등 관련서류를 원본 없이 사본만 제시했다. 정우개발이 C사에 400만 달러를 송금했다는 근거는 내놓지도 못했다. C사가 보내온 공문은 '송금 경로가 추적이 안돼 송금인을 알 수 없다'는 내용이라 정우개발의 주식 취득 사실은 여전히 모호하다. 설상가상 벽산건설 인도네시아 지사는 2006년 폐쇄됐다.
피고인 측 변호인들은 주식 출처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금융거래 자료가 없을 뿐 아니라 회사 자산으로 잡지 않고 제 3의 회사(H사)를 만들어 명의개서를 시도한 점 등을 근거로 법정에서 "비자금이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반면 검찰은 사기 혐의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벽산건설의 주식 의혹이 완전히 밝혀질지는 미지수다.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 등에 대한 선고공판은 이달 중 열린다.
인천=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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