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정모(25)씨는 졸업 필수요건 중 하나인 제 2외국어 점수를 따기 위해 최근 교내 외국어연수평가원에 50만원을 내고 프랑스어 수업을 신청했다. 정씨는 "졸업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돼 신청했지만 어문학 전공자도 아닌데 제 2외국어 수업을 들으려고 적지 않은 비용까지 지출하니 부담"이라고 말했다.
건설사 취업을 준비중인 정모(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과4)씨는 요즘 졸업 필수요건인 한자 2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두 달 넘게 하루 4시간씩 한자 공부를 하고 있다. 정씨는 "졸업을 앞둔 공대생이 한자시험까지 봐야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일부 대학들이 취업을 용이하게 하거나 대학의 건학 이념에 부합하는 인재 양성을 명목으로 의무화한 졸업인증 필수요건이 졸업생들의 학업 및 비용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 개인의 전공이나 관심과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데다, 별도의 대체 강의나 학원 수강을 해야 해 예비 취업자들의 발목만 잡는다는 지적이다.
한동대는 2007학년도 입학생부터 전공을 불문하고 전산ㆍ컴퓨터 관련을 4과목 이상 이수해야 한다. 하지만 경영경제학부 4학년 이모(25)씨는 "인문계 학생에겐 생소하기만 한 C언어, 데이터통계처리 프로그램 SPSS 등을 수강하느라 진땀을 뺐다"며 "학점을 따기 위해 돈을 들여 사교육 인터넷 강의까지 들었다"고 털어놨다.
졸업 요건 부담은 신입생들에게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지난 2009년 입학생부터 회계학 수강을 의무화 한 중앙대에선 인문ㆍ어문계열 학생들의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영어영문학과 1학년인 최모(19)씨는 "관심이 전혀 없는 회계학이 필수과목에 포함돼 울며 겨자먹기로 공부해야 할 판"이라며 "대충 공부해서 과락만 면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졸업 요건을 갖추기 위해 별도의 돈을 들여야 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연세대는 4학기 동안 매주 1회 1시간씩 채플을 들어야 졸업할 수 있다. 그러나 학기 중 채플수업을 듣지 못한 학생은 10여만원을 따로 내고 방학 동안 2박3일 간의 집중이수 캠프를 듣는 경우도 있다.
일부 대학들은 방학 중 4학년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토익, 영어 말하기 등 각종 외국어 및 한자능력시험 족집게 속성반을 유료로 운영하기도 한다.
학교 측은 얼마 간의 부작용을 인정하면서도 졸업 요건의 순기능을 더 강조하는 입장이다. 김정오 연세대 기획실장은 "졸업 요건은 학교별 사정과 건학 이념 등에 맞춰 정하는 것인 만큼 학교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다만 대체 강좌를 확충하고 인증 요건을 조금 더 세분화 해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히는 등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은희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위원은 "어학 점수나 컴퓨터 관련 자격증 등은 필요한 학생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부분인데 학교가 무리하게 적용 범위를 확대해 관련 없는 학생도 부담이 커졌다"며 "획일적인 기준으로 어떤 교육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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