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에 파견된 경찰관이 경찰과 관련한 인권위 내부 문건을 경찰청에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인권위가 이 사건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문건 유출자를 색출한 의도와 유출자 색출 이후의 솜방망이 조치에 대해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6일 인권위와 경찰청에 따르면 인권위에 파견돼 조사 업무를 담당하던 A 경감은 9월 서울 양천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피의자에게 가혹행위를 했다(본보 9월 22일자 10면)는 진정과 관련된 인권위 조사 결과 보고서를 경찰청에 넘겼다. 이 보고서를 받은 경찰청은 인권위 측에 "충분한 증거가 없으니 검찰에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기 전까지 결과를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9월 말 일부 언론이 양천서 가혹 행위 관련 인권위 결정문 원본까지 촬영해 보도하자 인권위는 내부 문건 유출자 조사에 나섰다. 이후 A 경감이 내부 시스템을 통해 문서를 빼낸 것을 확인하고 경찰청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이에 서울경찰청은 지난달 A경감을 파견 해제하고 서면 경고했다.
하지만 인권위의 유출자 색출 자체가 무리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우선 양천서 가혹 행위 조사를 마치고도 결과 공개를 미적거리던 인권위가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했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양천서 가혹 행위에 대한 진정을 지난해 7월 접수하고도 1년이 지나서야 결정을 내렸고, 이마저도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쉬쉬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이 언론에 보도되자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도 없는 문건 유출자 캐기에 나선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A 경감이 문건을 경찰청에 전한 것은 맞지만 인권위에서 내부 문건 유출에 대한 확실한 한계를 정해줬는지 모르겠다"며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면 A 경감의 행동이 문제가 됐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인권위 설립 이후 10년간 조사 결과나 결정문 내용이 공표되기 전 언론에 보도된 경우가 수두룩했는데 이번처럼 유출자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A 경감에 대한 인권위의 조치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인권위법에 따르면 인권위 직원은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위는 A 경감을 형사 고발하지 않고 경찰청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한 게 전부다. 인권위 관계자는 "우리는 파견 온 직원에 대한 징계 권한이 없어서 경찰청에서 징계하도록 요청했고, 경찰 비위에 대해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할지 의심스러워 형사 고발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청 관계자는 "이 문건이 정말 공무상 비밀에 해당했다면 인권위는 당연히 형사 고발을 했어야 한다"며 "인권위의 조치를 보면 A 경감의 행동이 정말 비밀 누설에 해당하는지 따져보고 싶은 생각만 든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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