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고2 자녀를 둔 학부모 A씨는 최근 아들의 독촉에 교원능력개발평가(교원평가) 웹페이지에 접속했다가 당황했다. 공인인증 등 복잡한 로그인 절차는 둘째치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수학, 과학 교사까지 평가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들을 옆에 앉혀놓고 불러주는 대로 평가를 하다 교장의 인사관리, 예산집행 문항을 맞닥뜨리곤 포기를 선언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아들이 "부모님이 만족도평가에 참여했다는 증거를 못 가져가면 청소를 해야 한다"고 울상이 됐다. A씨는 "결국 온통 '보통' 지표로 도배를 하고 끝냈다"며 "알지도 못하는 내용에 대해, 안 하면 불이익까지 당하면서 하는 만족도 평가가 어디에 있느냐"고 말했다.
# 한 도교육청은 올해 각 학교에 교원평가 시행계획을 안내하며, 학부모에게 발송할 안내문 예시안으로 "전년도에 (우리지역 학교들이) 매우우수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올해도 많은 관심 부탁한다"는 문구를 포함했다. 또 학교에 현수막을 게재하도록 하면서 "학부모의 만족도 향상, 교육의 미래를 밝게 합니다"는 예시 문장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 교사는 "교육청이 어떻게 하면 객관적으로 학부모의 불만을 들을까 하는 고민 없이, 높은 평가를 얻기 위해 학부모 압박에 급급하는 모습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격 시행돼 올해로 2회를 맞은 교원평가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이달 중순까지 평가를 마감해야 하는 일선 학교들은 '학부모 만족도 평가'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일선 학교들은 평가완료 화면을 휴대폰으로 찍어 담임교사에게 보내도록 하거나, 평가에 참여하는 학생에게만 상점을 주거나, 담임교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확인 전화를 돌리는 등 사실상 강제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지난해 저조했던 학부모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각종 황당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 법 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채 시행 중인 교원평가는 평가가 낮은 교사가 연수를 받는 것 이외에는 달리 활용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교육청의 학교장 경영능력 평가, 학교장의 교사 성과급평가에 교원평가 참여율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어서, 학교들은 참여율 끌어올리기에 혈안이 돼있다.
인천의 한 중학교 교사는 "교무회의 시간 등에 교장 교감이 '무조건 50%까지는 올려야 한다. 못 올리면 불이익을 감수하라'고 해 텔레마케터처럼 종일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교사의 교육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려운 학부모들은 학생의 전언(傳言)에 의존해 교사를 평가하기 십상이다. 아니면 그저 5점 척도 중 무조건'보통'을 '찍는' 상황이다. 그러니 막상 학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평소 교사의 자질을 깊이 고민하고 살피던 학부모들의 평가는 오히려 희석될 수밖에 없다.
합리적인 평가방식이 확보되지 않은 채 참여율만 높이다 보니 결과에 대한 신뢰도도 낮다. 지난해 11월 충북대 지방교육연구센터가 16개시도 교사 학생 학부모 7만1,8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원평가가 교직 발전에 기여했다'는 답변은 학부모 50.51%, 학생 39.15%, 교사 15.63%에 그쳤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학부모 만족도 평가가 전언평가, 인기평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교사의 전문성 향상, 교육력 강화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며 "학부모 단체 등과 교원평가개선위원회(가칭)를 만들어 관련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상임대표는 "현재 학교는 자녀의 학교생활, 교사의 관찰결과 등 최소한의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는다"며 "학교가 학부모회, 각종 설명회, 홈페이지 정보공개 등을 통해 수업, 학교운영 실태를 투명하게 알리고, 공개수업 및 관련모임을 활성화해야 학부모들이 이를 평가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율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전제상 경주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평가는 피평가자에 대해 전문적으로 판단하고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한 사람 해도 교사는 긴장하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며 "학부모들이 참여할 여지는 열어놓되 맹목적으로 강요하기보다 학생들의 평가를 적극 반영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간에 많은 이들로부터 평가를 받으려 하지 말고, 3~5년치 이상 누적된 결과에 신뢰를 보내고 이를 활용한다는 인식을 갖고 시행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