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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부드러운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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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부드러운 정치

입력
2011.11.0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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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정치가 부럽다. 몇 달 전 일이지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기자 만찬에서 "출생 비디오를 공개하겠다"고 말한 뒤 새끼 사자가 태어나는 '라이언 킹'의 한 장면을 보여줘 좌중을 폭소의 도가니로 만든 장면은 참 인상적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오바마의 출생지가 하와이가 아닌 케냐이기 때문에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 데 대한 응수였다. 오바마는 그 며칠 전 출생기록부를 공개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제 트럼프가 다른 이슈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여유로운 반격이었다.

■ 얼마 전에는 오바마가 "나는 프롬프터(자막기) 없이 연설하는 법을 배우겠고, 바이든은 프롬프터를 그대로 읽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프롬프터에 너무 의존한다는 공화당의 비난을 받아들이면서 바이든 부통령의 거침없는 언행을 짚고 넘어간 것이다. 그렇다고 오바마가 매사 유머로 국면을 넘기는 것은 아니다. 취임 초 자신이 지명한 고위공직자 후보들이 탈세로 연이어 낙마하자, 오바마는 "제가 일을 망쳤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 "스스로에 대해 좌절감을 느낀다"는 파격적 표현으로 사과, 싸늘해진 민심을 돌려놓았다.

■ 한나라당 혁신파 의원들이 4일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는데, 당내에서는 "너나 잘 하세요" "너부터 반성하라"는 반발이 나오고, 청와대는 냉소적으로 반응한 모양이다. 오바마의 대응과 비교하면 차이가 많이 난다. 유머도 없고, 진정성도 없어 보인다. 혁신파 의원들이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국민 다수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곡동 사저 의혹,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언급, 측근 낙하산 인사의 반복 등에 대해 사과하라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이명박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진솔한 사과는커녕 제대로 된 해명도 한 바 없다.

■ 애초 그런 기대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개그맨 김제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에서 사회를 본 직후 출연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린 대학강사가 기소되는 풍토에서 유머와 진정성을 기대한다는 게 사치일 수 있다.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는 만평이나 코미디 프로에서 '비대하고 우둔한 바보'로 곧잘 묘사됐지만 "나도 재미있게 본다" "국민이 웃을 수 있다면 기꺼이 바보가 되겠다"며 웃어 넘겼다. 담대한 유머가 넘치는 부드러운 정치, 진솔한 사과가 감동을 이끌어내는 진정성의 정치가 보고 싶은 요즘이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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