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 감시 시스템의 주요 축인 사외이사제가 여전히 겉돌고 있음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어제 발표한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정보공개'에 따르면 국내 시가총액 상위 100개사 중 대기업집단 소속 79개사가 지난해 이사회에 상정한 안건 2,020건 가운데 사외이사의 반대로 부결된 안건은 1건(0.05%)에 불과했다. 사외이사가 지배주주와 경영진을 위한 '거수기'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사외이사들의 거수기 행태가 겉으로는 사외이사제가 강화되는 추세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게 더 문제다. 공정위에 따르면 국내 43개 대기업집단의 이사회에서 사외이사의 비율은 47.5%로 지난해보다 1.2% 포인트 높아졌다. 사외이사의 공정한 추천을 위한 '사외이사후보 추천위원회'를 설치한 기업도 전체 조사대상 218개 중에서 103개사(47.2%)로 작년보다 4개사가 증가했다. 한마디로 사외이사제 강화가 알맹이 없이 시늉만 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사외이사제는 대주주나 회사 경영진 외에 외부 전문가들을 이사회의 구성원으로 선임함으로써 경영을 객관적으로 감독하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1998년 국내 상장회사의 사외이사제 의무화 이래 객관적 전문가 대신 대주주나 경영진의 우호세력이 사외이사 자리를 꿰차온 게 문제다. 실제로 한국상장사협의회의가 국내 338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데 따르면 기업 사외이사 추천에서 주된 고려사항은 '대주주와 임원과의 친분' '경영에 대한 업무 협조 성향' '업계 인맥 보유' 등이었다고 한다.
거수기 사외이사의 폐해는 부산저축은행 사태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금융감독원 출신이나 비전문적 명망가들이 사외이사로 일하면서 감시는커녕 거꾸로 비리의 방패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무책임한 사외이사는 기업과 주주, 국가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이사회에서 사외이사의 역할을 공개하도록 규정을 개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사외이사 추천 방식과 책임 부여 등 보다 근본적 차원의 개선책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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