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미래를 불안하게 보는 여러 이유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출산율과 저축률의 급격한 저하 현상이다. 우리나라 출산율과 가계저축률은 전세계 최하위권에 속한다. 출산율과 저축률의 하락은 노동의 공급은 물론, 투자를 통한 자본축적을 어렵게 하여 잠재성장률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할만한 현상이다. 더욱이 저출산과 맞물린 급격한 고령화와 수명의 증가 등으로 인해 은퇴 세대의 노후도 제대로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요성 비해 관심은 저조한 현실
우리나라는 국민연금, 개인연금, 퇴직연금이 각각 1988년, 95년, 2005년에 도입되어 명목상 3층 노후소득 보장제도가 정립되어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빠른 고령화로 인해 적립액보다 수령액이 더 커져서 점차 부실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연금은 가계의 재무구조 악화로 인해 가입률이 초기보다 점점 하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안정적 노후 보장을 위해 남은 것은 가계와 기업이 공동으로 적립하는 형태인 퇴직연금을 보다 활성화시키는 것밖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퇴직연금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다소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세제혜택이 필요하다. 현재는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합산하여 연간 4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해주고 있는데, 이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예컨대, 호주에서는 근로자가 연간 5만 달러까지 소득세 최저세율을 적용받으며, 기업은 납부금액 전액을 손비로 인정받는다. 미국에서도 1만 6,500달러까지 세제혜택이 주어지고 있다.
물론 퇴직연금에 대폭적인 세금혜택을 주면 당장의 세수는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퇴직연금의 확대는 개인적인 노후 보장의 수준을 높임으로써 경제 전체적으로는 미래정부의 재정부담과 미래세대의 세금부담, 그리고 정치적 갈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최근 남유럽 국가들은 재정위기 속에서도 국민들이 복지 혜택과 연결되는 재정축소에 연일 반대 데모를 벌이는 등의 갈등을 겪고 있다. 이를 통해 복지 혜택은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퇴직연금은 근로자 자신이 축적하여 모은 자금을 노후에 활용하는 것이므로 다음 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남유럽 국가들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해줄 것이다.
더욱이 퇴직연금시장이 활성화되면 또 다른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우선 실질적인 가계 저축을 증대시킴으로써 투자 재원이 늘어나 성장 잠재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막대한 퇴직연금 자산을 운용하는 금융산업이 발달하고, 금융투자의 풀이 증가하면서 장기 분산 투자가 용이해진다. 연금자산의 확대로 안정적 노후보장이 가능해지면 극단적인 부동산 쏠림현상의 악순환이 완화되고 가계 자산구조도 점차 건전화 될 것이다. 나아가 자산운용과 관련한 아시아 금융허브의 구축이 촉진되고 국내 자산운용업이 수출산업으로 발전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호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호주의 퇴직연금시장은 퇴직연금 의무가입 제도뿐만 아니라 대대적인 세제 혜택, 가입자의 펀드 선택권 제공 등의 영향으로 급성장하였다. 즉, 강제적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1992년 이후 규모가 10배 이상 급증하여 지금은 미국, 룩셈부르크, 프랑스에 이어 전 세계 4위의 자산운용시장으로 성장하였다.
정부가 해결사 역할 맡아야
퇴직연금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퇴직연금의 의무화나 세제 혜택 강화는 물론 투명성을 높여 정보 비대칭 문제도 해소해야 한다. 퇴직연금처럼 장기로 운용되어야하는 상품은 돈을 맡은 금융회사가 얼마나 적절히 운용하는지 연금 가입자가 세세히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1990년대말 연금 불완전 판매 사건의 여파로 금융감독기구가 대대적으로 개편된 적도 있다. 그만큼 퇴직연금제도의 안정적 운영은 많은 국민들의 이해와 국가의 미래가 달린 아주 중요한 과제이다.
최흥식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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