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공무원 A씨가 업무상 횡령으로 1심에서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이는 당시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 했고,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아냈다.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A씨 외동딸의 약혼자가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1심 보도내용만 본 뒤 파혼을 통보하는 일이 생겼다. 이를 안 A씨는 포털 사이트 B사에 관련기사가 검색되지 않게 해달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참가팀은 각각 A 혹은 B 입장 중 하나만 변론하고, 상대 입장은 반론하라.
5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제1회 언론법 모의재판 경연대회’ 문제다. 한국언론법학회가 주최한 이번 경연은 국내 첫 언론법 모의재판이란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경연엔 국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생과 대학원생으로 구성된 총 61개 팀이 참가했다. 이중 서면평가를 통해 가려진 12개 팀이 이날 직접 심사위원 9명을 상대로 구술 변론을 했다.
우승은 3개 대학 로스쿨팀이 공동 수상했다. 성균관대‘갤럭시’, 서강대 ‘만수옥’, 전북대‘셰흄’이 1위를 거머쥐었다. 심사를 맡은 김종철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1개 팀에 최우수상을 줄 계획이었지만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며 “특히 평가의 객관성을 위해 출신학교 등 개인정보를 모른 채 심사했다”고 전했다.
‘갤럭시’는 B사 판단이 맞았다고 봤다. 기사에 불법성이 없고,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단순히 시간이 흘렀다고 기사를 삭제해달라는 것은 올바른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점도 내세웠다. 반면‘만수옥’은 A씨 편을 들었다. 기사에 실명이 보도됐으므로 명예훼손이 성립하는데, 이를 바로잡는 노력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폈다.‘갤럭시’소속의 김우주(30)씨는 “9월초 경연 공고 직후부터 준비했지만 중간고사 기간과 겹쳐 준비시간이 부족했다”며 “기존 판례연구 등에 중점을 둔 게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경연이 마무리된 뒤 참가자들은 언론현장에서 법적 해결을 기다리는 분쟁들이 늘고 있지만 법적 대응을 위한 전문 법률가 양성은 부족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첫 언론법 모의재판에 출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일부 참가자들은 언론법전문 법률가가 되고 싶다는 희망도 내비쳤다.
언론법 모의재판이 처음 열렸는데도 로스쿨생들의 신청이 쇄도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낸 측면도 있다. 내년에 졸업하는 로스쿨 1기생 2,000명 중 절반 이상이 취직에 고전할 것이라는 등의 불투명한 전망이 그것이다. 한 참가자는 “스펙 관리 차원에서 모든 경연에 참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재황 한국언론법학회장은 “언론법 분야 전문가를 희망하는 예비법조인을 발굴하고 그들에 대한 지원을 실현하는 첫 걸음으로 경연을 마련했다”며 “앞으로 지원부분에 더욱 신경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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