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상업적 의도나, 작가의 평판, 문단 계파 등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문학적 성취를 기준삼은 공정한 심사로 '작가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문학상'으로 꼽히는 한국일보문학상이 새로운 주인공 탄생을 앞두고 있다. 올해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의 본심 후보작으로 결정된 5편은 김사과(27)씨의 단편 '더 나쁜 쪽으로', 김성중(36)씨의 단편 '허공의 아이들', 조해진(35)씨의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 , 최제훈(38)씨의 장편 <일곱 개의 고양이 눈> , 최진영(31)씨의 단편 '돈가방' 이다. 작가 5명의 인터뷰를 매일 연재한다. 최종 수상자는 본심을 거쳐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일곱> 로기완을>
"작품 메시지니 작가 의도 같은 말을 싫어하는데요."
예상은 했지만, 역시 우문이었다. 최제훈(38)씨의 첫 장편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발행)을 두고 작품의 메시지를 물을 게 아니었다. 롤러코스트의 현기증을 유발할 정도로 온갖 이야기들이 곡예를 부리는 이 작품에서 이야기 속 메시지를 찾는 것은 애당초 부질 없는 짓이었다. 일곱>
지난해 9월 나온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 에서 경쾌한 서사의 탈주를 감행, "문화공학적인 새로운 출구"(우찬제 평론가)라는 찬사를 받았던 그는 이 작품에선 한 걸음 더 나간다. "도발적이고, 무모하며, 심지어 완벽하다"(조효원 평론가)는 평이 나올 정도로. 분명 그는 한국 문학의 새로운 루트를 아찔한 속도로 달려가는 중이다. 퀴르발>
'브리콜라주 소설' '난장의 글쓰기' '메타 픽션' 등 평자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는 그 루트는 다름 아니라 이야기의 재료를 가지고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합성하고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글쓰기. 평론가 김형중씨는 이를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소설쓰기'라 부르며 2010년대 소설의 대표적 새 흐름으로 꼽는다. 2007년 서른 넷의 늦은 나이에 등단한, 아직은 신인 작가지만 단 두 권의 책으로 그는 단숨에 이 흐름을 이끄는 대표급 주자로 발돋움했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은 각각 독립된 4편의 중편이 모자이크처럼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 소설로 서사의 해체와 재조립을 통해 이야기를 쉼 없이 변주하다 보니 줄거리를 딱히 요약하기도 힘들다. 첫 머리에 놓인 '여섯 번째 꿈'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고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를 연상시키며 그나마 전통적 추리 서사의 문법을 따른다. 폭설로 외부와의 연락이 끊긴 고립된 산장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것인데, 전체 이야기에서 보자면 일종의 미끼다. 본격적 이야기는 사실 그 다음부터. 첫 편에 언급됐던 인물, 사건, 소재 등이 다양하게 변주돼 증식된다. '번역 속 살인' '쌍둥이 남매의 비극' '간질 환자의 환상' 등이 핵심적 모티브다. 이를 기둥 잡아 이야기와 이야기가 기묘하게 겹쳐지고 얽히며 이야기의 미로를 만들고 미스터리 복수극 공포 해프닝 환상 등 온갖 장르의 소설 형식이 미로 곳곳에서 튀어 나온다. 그리고> 일곱>
이야기 속에서 현실의 삶은 사라지고 이야기의 이야기만 무한 증식하는 이런 글쓰기가 자칫 유희로 그치지는 않을까. '의도'란 말을 싫어한다는 그에게서 겨우 끄집어 낸 작품 의도는 "이야기의 자생력을 실험하고 싶었다"는 답이었다. 이 소설의 첫 문장과 끝 문장 역시도 '자, 이야기를 계속해봐. 잠이 들지 않도록'이다.
이 끈질긴 이야기에 대한 욕망의 뿌리가 선명히 드러나는 곳은 셋째 편 '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 처한 곳이 바로 폐광의 동굴 속이다. 생을 지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의 환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새로운 환각을 만들어 냈다가 해체하면서 아직도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거죠. 당신에게 안주는 곧 죽음을 의미하니까."(266쪽) 얼핏 유희처럼 보이는 이야기의 변주 밑에는 우리 삶이 본질적으로 '폐광 속 삶'이란 탈근대적 허무주의가 깔려 있는 것이다. 작가가 좋아하는 사상가와 작가로 꼽은 이도 탈근대 사상과 문학의 선구자인 니체와 보르헤스다.
연세대 경영학과 92학번인 최씨는 군대를 갔다 온 후 남들은 취업 준비에 여념 없을 때 거꾸로 문학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늦깎이 문청'. 대학 졸업 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다시 입학한 그는 졸업 후 대학 교직원 생활을 4년간 했지만, 본격적인 창작을 위해 직장을 그만뒀고 이듬해인 2007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그는 "군대 갔다 오면 현실적으로 변한다고 하는데, 사실 저에겐 문학을 하게 된 것이 현실적인 것이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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