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시간과 시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시간과 시계

입력
2011.11.06 11:40
0 0

전업시인을 자처하면서 10년 넘게 시계를 차지 앉고 지냈다. 시계가 필요 없었던 생활 탓도 있었지만 은현리란 시골마을에 살면서 나에게 시계는 무용지물이었다. '산중에 책력 없어'란 옛시조의 한 구절처럼 '꽃 피면 봄이요 잎 지면 가을'인데 시계가 무슨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렇게 한 10여년 살다 보니 몸이 먼저 계절과 시간의 흐름을 읽어냈다. 낮잠을 자다 일어나도, 새벽에 눈을 떠도 몇 시쯤이라는 것을 맞힐 수 있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여동생과 매제가 내게는 과분한 손목시계를 선물했다. 다시 시계를 차면서부터, 시간을 시계로 확인하면서부터 허둥지둥하는 일이 많아졌다.

강의시간에 맞추기 위해, 회의나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나는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확인하는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면서부터 사람은 바빠지는 법이다. 시간 따라 바빠지면서 시계의 노예가 되는 법이다. 사람이 분, 초까지 나눠 만들어진 큐시트를 따라 움직이는 시간의 배우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시계는 자신의 속에 시간을 가두는 기계다. 시계를 찬다는 것은 스스로 시간 속에 갇힌다는 의미다. 태초엔 시간뿐이었다. 인류는 그 시간을 시계 속에 가두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가. 동생 부부에겐 미안하지만, 시간에서 자유롭기 위해 요즘 시계를 벗어 놓고 다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