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사운드 디자이너'. 언뜻 들으면 낯설지만, 우리는 매일 이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바로 휴대폰을 통해서다. 벨소리와 터치음, 키패드음, 알람 소리 등을 비롯해 휴대폰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가 이들의 오선지에서 나온다.
하나의 휴대폰에 들어가는 소리 종류는 무려 100여 종. 게임과 동영상 등 각종 오락물이 들어있는 스마트폰은 소리 종류가 더 늘어난다. 휴대폰에 각종 효과음으로 생명력을 불어 넣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운드랩팀을 만나 소리의 세계로 들어가 봤다.
"0.1초를 잡아라"
"승부는 0.1초에 결정난다. 키패드를 누르는 순간 느낌이 전달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윤중삼 책임은 "소리에 대한 느낌만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결정은 빠를 수 밖에 없다"며 휴대폰 사운드 디자이너들의 숙명을 토로했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 셈이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길을 걸을 때, 고개를 숙이면서 걷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이용구 책임은 "사람들이 걸을 때 신발 종류와 바닥 재질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를 유심히 관찰할 때가 많다"며 "신발의 앞굽과 뒷굽이 바닥에 닿을 때 나는 소리가 키패드음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의 아이디어 창구는 의외로 가까운 길거리에 있었다.
휴대폰 사운드도 현지 맞춤형으로
휴대폰이 해외 각지로 수출되는 만큼,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2009년 인도에서 제기된 벨소리 문제가 좋은 예이다. 교통 혼잡으로 경적을 자주 울리는 등 소음이 워낙 심해 자동차 안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불만이 계속 제기됐던 것. 심상원씨는 "현장에 가보니 소음이 비행장을 방불케 했다"며 "음량을 높여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어서 다른 주파수 대역의 소리로 교체했다"고 회고했다. 그 결과 휴대폰 판매량이 증가해 매출은 물론이고 시장점유율까지 올라갔다. 현지 상황에 맞는 소리를 찾아 적용한 게 적중했던 셈이다.
아날로그 사운드 인기
각종 소리를 연구하다보니 난청 기미가 나타나는 등 부작용도 크다. 노윤성 사원은 "평소 음악감상을 좋아했지만, 이 일을 시작한 이후에 가급적 음악 듣는 것을 피하고 있다"며 "그만큼 청력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고행이 있기에 이들이 얻은 결과가 값지다. 윤 책임은 "세계로 수출되는 휴대폰 벨소리는 지역별로 다르다"며 "가장 인기 있는 소리는 디지털 기술이 가미된 인위적인 소리보다 풀벌레나 바람소리 등 자연의 소리"라고 말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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