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추정 시각을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점은 향후 재판에서 분명 쟁점이 될 것입니다."
지난 9월15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 12부(부장 한병의)는 만삭의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의사 백모(31)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며 이 같이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사망 후 발견된 아내의 상태, 부검 결과, 당일 백씨 행적 등 갖가지 쟁점들을 검토해 백씨를 범인으로 봤지만 정확한 사망시각에 대해서만큼은 판단을 유보했다.
문제는 사망시각에 따라 백씨의 알리바이 성립 여부가 달라지는 만큼 조만간 열릴 예정인 2심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사건에서 왜 사망시각이 유ㆍ무죄 판단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일까.
지난 1월 14일 백씨는 전날 전공의 자격 1차 시험을 잘 보지 못해 상심이 컸다. 시험에 합격해야만 지방이 아닌 서울의 군 병원에 군의관으로 복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욱하는 성격에 수험 스트레스를 인터넷 게임으로 해소해 아내의 불만을 자주 샀던 백씨는 이날도 어김없이 게임을 한 뒤 이날 오전 6시41분쯤 집을 나선다. 자택이 있는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폐쇄회로TV에 포착된 시간이다. 이후 아내는 집안 화장실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검찰은 백씨가 집을 나서기 전, 즉 6시41분 이전에 아내와 다투다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 지었다.
하지만 변호인 측은 사체의 직장온도와 사망장소의 실내온도 차이 등을 측정, 사망시각을 추정하는 '헨스계표(Hensge nomogram)'분석 결과를 토대로 숨진 박모씨의 사망시각을 오전8시30분 이후라고 주장했다. 남편 백씨가 집을 나간 이후에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거나 임산부인 아내가 순간적인 어지러움에 중심을 잃고 넘어져 이상자세에 이르러 질식해 사망했다는 취지다. 반면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조사를 토대로 검안서의 기준이 되는 사후강직과 시반을 살펴보면 사망추정 시각은 오차범위를 감안, 전날 O시부터 당일 오후 2시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양측의 엇갈린 사망시간 주장에 대해 피고인 측 추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했다. 당일 피해자의 직장온도 측정이 무려 8시간 뒤에 사건 장소가 아닌 병원 영안실에서 이뤄져 기본 조건조차 성립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망추정시간 오차범위가 무려 14시간이나 되는 경찰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도 아니어서 여지를 남긴 것이다.
백씨의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더펌의 이정훈 변호사는 "시간을 정확하게 추정할 수 없다면 검ㆍ경의 혐의 입증이 불충분 했다는 방증으로 유죄 선고는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혀 2심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반면 검찰 관계자는 "유죄 판단은 사망시각을 비롯한 다양한 증거들을 종합해 도출해 내는 것으로 정황증거, 국과수 분석 등 나머지 근거들을 추가해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만삭의 의사부인 사망사건 항소심은 오는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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