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림이다/손철주·이주은 지음/이봄 발행·292쪽·1만7,500원
역사의 미술관/이주헌 지음/문학동네 발행·368쪽·1만6,000원
그림 감상에서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공감하게 되는 건, 그림이 감성의 예술인 동시에 역사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한 장의 그림은 절대군주시대에 별다른 해설 없이 황제의 권위를 드러냈고, 종교가 헤게모니를 쥔 중세시대에는 성서 내용을 알리는 도구였다. 덕분에 평면의 그림이 품은 풍성한 이야기와 무한한 해석의 여지는 '그림 읽어주는 남자 혹은 여자'의 등장 가능성 역시 활짝 열어둔다. 미술에 관한 탁월한 이야기꾼의 저서가 잇달아 나왔다.
<다, 그림이다> 는 동양화와 한시에 식견이 깊은 손철주(학고재 주간)씨와 서양미술사가 이주은(성신여대 교육대학원 교수)씨가 편지 형식으로 동서양의 그림을 읽어낸 책이다. 그리움, 유혹, 나이, 어머니 등 10개 주제별로 손씨가 먼저 서너 점의 동양화에 그림이 그려진 배경 설명과 자신의 감상을 곁들이면, 이씨가 서양화를 같은 방식으로 풀어 답장하는 형식이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이 나눈 편지는 그림읽기에서 더 나아가 사유와 시야까지도 동서양으로 확장한다. 그 덕에 여느 연애편지보다 읽는 재미가 있다. 다,>
나이를 주제로 한 장에서 손씨는 "나이를 먹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낡지는 말자"면서 오원 장승업의 '삼인문년'을 보여준다. '세 사람이 나이를 묻는다'는 뜻의 작품 속에는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 세 명이 등장한다. 천지를 창조한 '반고'까지 들먹이며 누가 가장 오래 살았는지를 겨루는 그림이다. 이에 이씨는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머리 장식을 한 할머니를 그린 쿠엔틴 마시스의 '그로테스크한 늙은 부인'을 보여주며, 나이가 들어도 아름답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조근조근 옆에서 말해주는 듯한 문체 덕에 그림 속 인물들의 대화가 귓가에 들릴 듯 생생하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씨의 신간 <역사의 미술관> 은 그림으로 보는 역사책이자 역사로 보는 그림책이다. 정복자로 이름을 떨친 인물을 다룬 '산은 높고 골은 깊다'부터 시대의 분수령이 된 역사적 현장을 다룬 '정신의 역사, 역사의 정신'까지 네 장으로 구성했다. 보고 싶은 부분을 어디든 펼쳐 읽어도 될 만큼 독립적이다. 각 장 말미에 한 페이지로 정리한 '한눈에 읽는 역사'는 그런 작품을 잉태한 시대적 배경을 거시적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역사의>
러시아 리얼리즘의 대가 일리야 레핀의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은 러시아 역사의 비극적인 순간을 생생히 묘사한 작품이다. 러시아 최초의 차르, 이반 4세(이반 뇌제ㆍ1530~1584)는 유능한 통치자인 동시에 잔혹한 군주였다. 툭하면 분노하는 성격 탓에 가장 의지했던 태자까지 실수로 죽였다. 피 흘리는 아들을 끌어안은 노인의 두려움과 회한 섞인 눈빛. 그런 설명이 곁들여지자 그림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 살아 움직인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이야기로서의 역사와 이야기로서의 그림이 만나 짝을 이룬 시도는 대체로 성공적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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