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펠탑 앞 8·15행사, 목청껏 불렀던 애국가 합창…그 벅참이 날 일깨웠다"
한국 홍보 전문가, 독도 지킴이. 이 정도 소개하면 누구인지 금세 알 만하다. 서경덕(37) 성신여대 객원교수다. 그는 지난 1일에도 영국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 옥외광고판에 30초짜리 아리랑 영상광고를 시작했다. 케이팝이라는 한류를 알리기 위해 한국의 혼이 담긴 아리랑 광고로 힘을 보태겠다는 것이다. 한 시간에 두 번씩 하루 50번, 한 달 간 모두 1,500번 상영된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광고를 자비로 게재한 이래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한국을 알리는 영상광고를 상영했고, 파리 유네스코빌딩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관저 등에 미술가 강익중씨의 한글 작품을 영구 설치하기도 했다. 내년 8월 15일에는 타임스퀘어 광장에 국가 단위로는 세계 최초로 대한민국 홍보 전용 광고판을 세우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진 그를 만났다.
_ 왜 이런 일을 하게 됐나.
"대학 다닐 때인 1990년대 초중반, 세계화라는 단어가 대두되기 시작할 때였다. 삼성 현대 LG 등의 대기업에서 세계 1등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긴장감이 감돌 때였다. 세계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몸으로 부딪치고 싶어 유럽 배낭여행을 나섰다. 나는 생김새가 한국 토종인데 외국에 나가면 중국인이나 일본인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88올림픽을 치렀는데도 세계인들은 한국에 대해서 너무나 몰랐다. 그때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작은 일부터 시작했다. 당시 배낭여행이 붐이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배지를 백팩에 빽빽하게 달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다. 얼마만큼 외국을 다녔는지 과시하는 것이다. 남대문시장에서 태극 무늬 배지 300개를 구입했다. 배낭여행에서 외국 사람들에게 '태극기'라며 나눠줬다. 그런 행동이 내 인생을 바꿀 만큼 진전될지는 몰랐다. 방학 때는 배낭여행을 하면서 세계를 배우고 한국을 전파하자는 생각을 했다. 당시만 해도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방식이었다. 파리 에펠탑 앞에 매년 8월15일에 모여서 큰 행사를 해보자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_ 왜 8월15일인가.
"그날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얘기를 언뜻 들었다. 아마도 광복절이라 모이는 것으로 알았다. 파리 에펠탑 광장은 전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단지 애국가를 부르더라도 모여보자라고 생각하고 지나가는 한국 사람들에게 모이자는 얘기를 했다. 예상보다 많은 300명 가까이 모였다. 내가 사회를 봤다. 자연스럽게 둥그런 원이 그려졌다. 애국가를 한번 불러보자고 했다. 그런데 세상에서 그렇게 큰 목소리의 애국가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도 나와 똑 같은 느낌이었다. 외국을 다니면서 동양인으로서 서러움에다 중국 일본보다도 뒤처진다는 아쉬움이었다. '아리랑 목동'도 부르고 만세삼창을 외쳤다. 그때 자신감을 얻었다. 굉장히 많은 외국인들이 주변을 둘러싸 사진도 찍었다. 아마도 그들이 가족,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봤을 거다. 에펠탑 행사는 우리에게는 광복절 행사지만, 외국인들에게 8월15일은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평화의 날'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매년 8월15일에 광복절 행사를 주최하는 대학생들을 모집, 노하우를 알려줬다. 지금까지 너무나 잘 되고 있다. 당시 해외에서 대한민국을 소개할 프로젝트를 한두 개씩 준비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 무렵 월드컵 한일 공동 유치가 결정되었는데도 외국인들은 죄다 일본에서 개최되는 줄 알고 있었다. 한국 배낭족들을 만나면 얘기했다. 월드컵도 홍보하고 이런 의미있는 행사를 해보자는 취지였다."
_ 그 후에는 어떤 일을 했나.
"석사 학위를 마치고 군에 갔다가 2001년에 제대했다. 그때가 월드컵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이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개막식은 한국, 폐막식은 일본에서 진행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월드컵 행사를 만들고 싶었다. 제대를 앞두고 미국 CBS의 'Believe or Not'이라는 프로를 보다가 잔디로 재킷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진폴 하딩이라는 사람이었다. 환경운동가 겸 목수로 재킷에 씨앗을 뿌려 물을 주고 온도를 조절해주면 잔디가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저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뉴욕으로 달려갔다. '동대문에서 김서방 찾기'였다. CBS에 가면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당시 월드컵은 친환경을 표방했다. 상암구장 잔디로 친환경 월드컵 재킷을 만들면 세계인들의 기억에 깊이 각인이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88올림픽에서 세계인들은 굴렁쇠 소년을 기억한다. 월드컵 개막식에서 세계인들에게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잔디재킷은 그런 의미였다."
_ 그를 찾았나.
"CBS에서 그의 연락처를 주지 않았다. 그에 대한 전단지를 만들어 센트럴파크에 몇 천 장을 뿌렸다. 누가 소호의 가게에서 그를 봤다고 했다. 그래서 3,000여 개의 가게를 다 뒤졌다. 또 누군가 타임이나 뉴스위크에서 본적이 있다고 해 도서관에서 2주일 동안 10년치를 뒤졌으나 못 찾았다. 워싱턴으로 날아가고, 미국잔디협회가 있다는 시카고로도 날아갔다. 4개월을 헤맸으나 못 찾았다. 지쳐서 한국식당에 들러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미주한국일보를 봤다. 거기에 '사람을 찾아준다'는 광고가 있었다. 흥신소 광고였다. 그곳을 찾아갔다. 한국인이 운영했다. 그는 나에게 '대단한 학생이다. 하지만 내가 사람 찾는 데 알바 학생을 고용해야 하니 그 비용만 달라. 그럼 월드컵을 위해서 나도 기여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이틀 만에 진폴을 찾아냈다. 나중에 보니 브루클린에 갔을 때 지나쳤던 집이었다. 그를 만나 '월드컵 개회식에서 잔디재킷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입히고 싶다'고 했다. 그는 기뻐하면서 '나는 영광이다.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_ 그래서 성공했나.
"한국으로 돌아와 청와대에 전화를 했다. 당시 문화담당 비서관인 것으로 기억한다. 진폴과 함께 편지도 썼다.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힘들겠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결국 실패였다. 하지만 '월드컵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잔디재킷을 만들어 한국을 홍보하려는 나의 이야기가 언론을 탔다. 그때 이름이 제법 알려졌다."
_ 독도와의 인연은.
"2005년 뉴욕에 머물 때 일본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을 했다는 턱없는 발표를 했다. '일본이 왜 이러나.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는 조용한 외교를 해야 하니 민간 차원에서 할 일이 없을까를 고민했다. 일본 정부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었다. 방법이 뭘까. 뉴욕에 살면서 뉴욕타임스라는 신문의 저력을 알게 됐다. 가정이나 지하철이나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다 이 신문을 보고 있었다. 세계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뉴욕타임스에 광고를 하면 기가 막히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찾아가서 독도에 대해서 광고를 내고 싶다고 했다. 물론 개인 비용이었다. 대학 때 알바로 모은 돈이 상당히 있었다. 그런데 거절 당했다. 뉴욕타임스에는 광고에 광고주 이름, 대표전화번호 등이 들어가야 했다. 나는 아무리 국가의 현안과 관련해 보탬이 되더라도 내 이름을 쓰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해를 못했다. 결국 내 웹사이트 주소를 쓰겠다고 해 5개월 만에 독도 광고가 나갈 수 있었다."
_ 돈은 얼마나 들었나.
"광고단가는 미국 언론사의 대외비다. 날짜 별, 면 별, 크기 별로 다르다. 돈은 상당히 들었다. 광고가 한번 나가고 난 뒤에는 아예 시리즈로 광고를 내기로 했다. 언론사도 워싱턴포스트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으로 넓혀갔다. 그리고 광고 영역도 넓히기 위해 아시아 쪽 기사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부분 동해(East Sea)가 일본해(Sea of Japan)로 나왔다. 독도는 영토 문제고 동해는 표기 문제다. 그래서 두 개를 한꺼번에 보이게 하기 위해서 광고에 지도를 삽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덕분에 국내 언론이 크게 다루고, 포털사이트에서는 네티즌들의 모금 캠페인이 벌어졌다. 3주 동안 10만여명이 2억1,000만원이라는 돈을 모았다. 당시만 해도 최단기간에 가장 많은 사람이 참가해서 가장 많은 돈을 모은 기록이 작성됐다. 1,000원, 2,000원짜리가 모인 것이다. 덕분에 워싱턴포스트에 '일본은 역사왜곡을 멈추라'는 전면광고를 내기도 했다. 당시 가수 김장훈씨가 광고프로젝트에 후원해주고 싶다고 해서 전면광고가 시리즈로 나올 수 있었다. 김장훈씨와 4년째 함께 일하고 있다. 내가 기획, 제작을 맡고 김장훈씨가 후원했다. 독도 문제의 가장 큰 적은 우리의 무관심이다. 일본 정부의 망언 때 한번 들끓었다가 이내 사라지는 것이 문제다."
_ 광고가 오히려 독도의 국제분쟁지역화를 인정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가.
"맨 처음에는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광고로 시작했다. 이후 지금까지 30여 차례 했다. 독도, 위안부, 고구려, 아리랑, 한식, 한복 등에 관한 것이다. 광고 내용도 이슈가 많이 됐다.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자로부터 연락이 와서 세미나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 당시 한 외국인 교수가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되면 오해할 수 있겠다'라고 지적을 해왔다. 이후 광고를 제작할 때 3편 정도 만들어서 외국인 1,000명 정도에게 사전 테스트를 한다. 국제분쟁지역이라는 오해를 사지 않으면서 그들의 머리와 가슴에 남을 수 있는 것으로 디자인과 문구를 골랐다. 그러다 보니 영역이 넓혀져 'Visit Korea' 형식의 관광 광고를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한국으로 놀러 오십시오. 대한민국은 섬이 많은 나라입니다. 남해에는 제주도가 있고 동해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있습니다. 언제든지 놀러 오세요'라는 식이다. 그리고 포항에서 출발해 울릉도와 독도를 돌아오는 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가 있다. 여기에도 독도 사진을 배경으로 깔아 광고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독도를 알리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한글도 시리즈로 계속 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등이다. 한글 문자와 문화를 외국인들이 쉽게 접하도록 하는 컨셉이다. 이런 것도 세계인들에게 자연스럽게 한국을 알리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독도 역사왜곡이나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광고들을 계속 집행, 일본 정부의 부당함을 알려서 세게 여론의 압박을 받도록 하자는 취지다.
역사뿐 아니라 훌륭한 우리 문화를 전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생각도 있다. 나의 활동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2년 전 MBC 무한도전 팀과 함께 비빔밥 광고를 뉴욕타임스에 냈고, 작년에는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비빔밥 영상광고를 냈다. 그러다가 타임스퀘어에 대한민국 홍보광고가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CNN 뉴스가 나가는 전광판을 대여했다. 거기에 'Visit Dokdo', 6ㆍ25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 광고 등을 했고 올해 8월15일에는 아리랑을 알리는 광고를 제작해서 올렸다."
_ 처음에 독도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한글, 한식, 한복 등으로 다양해졌다.
"내년에는 한복 관련 부분을 하려고 한다. 아직도 일본 기모노 같다는 얘기를 듣는다. 가장 힘을 쏟는 부분은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국가 단위로는 세계 최초로 대한민국 홍보 전용 광고판을 만드는 것이다. 24시간 독도, 동해, 한식 등에 대한 광고를 하고 싶다. 내년 8월15일이 목표다. 많은 기업들과 접촉하고 있다. 이게 지금 가장 큰 프로젝트다. 비용은 광고판 제작까지 해서 100억원 정도다. 자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계획 중이고 몇몇 기업이 동참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_ 다른 활동도 있나.
"타임스퀘어 영상광고 등은 물론 굉장히 효과가 좋다. 하지만 SNS의 영향력도 이에 못지않다. 유튜브에 올리고 트위터 팔로워 2만명에게 무한 리트윗을 요청했다. 팔로워 중에 외국인과 교포들이 많다. 유튜브에 비빔밥 광고를 올렸더니 100만 건이나 조회가 됐다. 한글날에는 트윗쇼도 진행했다. 트위터의 힘이 장난이 아니다. 비빔밥 광고 등을 트위터로 올려서 위력을 봤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나온 광고를 다시 트위터로 올려 퍼 나르게 한다. 일본, 핀란드 등에서도 연락이 온다. 전세계에 순식간에 급파할 수 있다. 내가 하나 올리면 각 나라의 교민들이 그 나라 말로 다시 올린다.
또 세계적인 유명 박물관을 많이 다녔다. 그러나 한글 안내가 전혀 없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정도밖에 없다. 한국어 서비스도 한번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찾아갔다. 이곳은 뉴요커들의 자존심이다. '왜 한국어는 없느냐'고 따졌더니 적지 않은 후원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후원금 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했다. 나도 그들도 황당한 상황이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정부 관계자가 통상 계약을 하는데 일개 국민이 찾아와서 자국어 서비스를 해달라는 것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일주일 뒤에 연락이 왔다. 기회를 주고 싶다는 얘기였다. 한국에 들어와서 정부기관과 기업 등 200여 곳을 다녔다. 결국 한 곳에서 지원을 받아서 소원을 이루게 됐다. 이후 뉴욕 현대미술관, 미국 자연사박물관, 워싱턴 스미소니언박물관 등에도 한국어 서비스를 유치했다. 요즘은 합동참모본부의 지원으로 세계 분쟁지역을 직접 다니고 있다. 이라크 자이툰부대, 레바논 동명부대 등을 방문했다. 총칼로 평화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_ 당신의 활동은 애국심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공명심인가.
"재미있어서 한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한국어 서비스가 시작되는 날, 한국어 브로셔가 꽂혀 있는 것만 봐도 기뻤다. 거기다 '환영합니다'라는 우리말이 흘러나오자 가슴이 벅찼다. 이런 것이구나, 애국심도 당연하지만 내가 재미있고 그래야 다른 외국인들도 즐겁게 받아들이지 않겠나. 스스로 활기차게 일을 하면 감동을 줄 수 있고 진정성이 느껴진다. 나라는 존재가 알려지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해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면서 많이 알려졌다. 언론을 타면서 젊은이들이 많이 연락을 해왔다. 제2의 홍보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에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작은 일이지만 한국을 알리는 것이 민간외교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요즘에는 KBS의 인터넷방송 프로를 맡았다. 각 분야의 국가대표급들로 가수 김장훈씨, 빙상의 모태범 이승훈선수 등 분야별로 성공한 사람들을 모셔서 그 위치에 올 때까지의 사연을 전달한다. 이런 과정에서 젊은이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주고자 한다."
_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아직도 한국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2년 전에 뉴욕에서 휴스턴으로 넘어간 적이 있다. 자동차 기름을 넣으려고 하다가 셀프서비스라 익숙하지 않아서 주인을 찾았다. 주인은 '한국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아직도 이렇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그들은 우리를 잘 모른다. 한국 문화가 세계에 많이 알려져서 서로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_ 미술가 강익중, 디자이너 이상봉씨 등도 함께 참여한다고 들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설치미술가, 패션디자이너로 한글에 대한 작품을 많이 한다. 그래서 직접 찾아갔다. 조언이라도 한번 들어보는 것도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잘 대해줬다. '젊은 친구가 벌써 이런 생각을 하나. 뭐든 도와주겠다'고 했다. 지금은 너무나 친한 사이가 됐다. 강익중 선생님은 작품을 기증하고 내가 세계 유명 건물의 관계자 등에 접촉해서 영구 전시를 한다. 파리 유네스코 건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관저, 중국 상하이임시정부에도 설치했다. 우리가 죽기 전에 세계 200여 개 주요 건물에 작품을 넣자고 다짐했다. 이상봉 선생님은 늘 디자인 자문을 해준다. 지난해에도 큰 건을 했다. 세계 대학생들과 5대양 6대주를 다니면서 각자 자신의 꿈을 적은 3만명분의 천 조각을 모았다. 그걸로 이상봉 선생이 '대한민국 드림 프로젝트'라는 작품을 만들어 대한민국 외교부 청사를 덮었다. 축구스타 김병지 선수, KCC 농구단 추승균 선수 등도 도와준다. 각 분야의 대가들이 도와주면서 활동이 탄력을 받는다."
_ 네티즌들의 후원도 받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인가.
"맨 처음에는 다음 아고라를 통해서 어떤 네티즌이 모았다. 3주 동안 2억1,000만원이 모였다. 지금은 소셜커머스 회사인 위메이크프라이스에서도 12만명의 돈을 모아줘서 한글 광고가 쉽게 되고 있다. 일부 비용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소셜펀딩을 해준다. 네티즌들이 직접 참여하는 일이라 의미가 있다. 내가 하는 일에는 관리팀도 없다. 회사를 만들어서 이윤을 남기는 것도, 재단을 만든 것도 아니다. 나는 특강 강의 등으로 먹고 살고 있다. 돈은 내가 만지지 않는다."
_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외국인들이 1년에 1,000만명 가까이 국내에 들어온다. 해외 홍보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들을 잘 대해주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 한 명이 좋은 이미지를 주면 우리 국민 모두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는다. 글로벌 에티켓을 잘 지키는 사람이 애국자다. 세계적 유적지에 가면 한글 낙서가 너무 많다. 독일의 어떤 성 앞에 가면 '낙서금지'라고 한글 간판이 서 있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이름들을 새겼으면 그랬겠나. 또 외국공항에서 너무 떠드는 한국 아이들이 많다. 공공장소에서는 말수도 줄이고 목소리도 낮추어야 한다. 중국인들이 시끄럽다고 하지만 한국인들도 만만치 않다."
▦서경덕은 누구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생명환경과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성신여대 대학원 객원교수로 PR분야 강의를 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현대미술관,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유치했고, 이후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주요 신문에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광고와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광고 등을 지속적으로 실었다. 또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비빔밥과 아리랑 광고를 상영하는 등 다양한 한국 알리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선임기자 jos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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