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풀리면 본전, 일이 계속 꼬이면 재앙.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가 유럽 전체를 상대로 벌인 정치적 도박이 가져올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구제금융방안(그리스 채권 50% 탕감)의 찬반을 국민에게 직접 묻겠다는 나름의 충정에서 비롯된 제안이지만 파판드레우 총리 자신과 그리스의 미래에 먹구름만 드리운 '자살골'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변수가 많아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예측하기 매우 어렵지만, 일단 그리스 의회의 내각 신임투표 결과가 나오면 그리스와 유로존의 향방을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여당인 사회당은 과반(151석)에서 한 석 많은 152석을 확보하고 있지만 한 표 이상의 이탈표가 나올 것이 확실해 야권 협조 없이 신임을 얻어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내각 2인자인 에반젤로스 베니젤로스 재무장관마저 총리 사임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파판드레우 총리의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이다.
로이터통신 등 상당수 외신들이 신임투표 부결(총리 사임) 쪽에 무게를 싣고 있는 가운데 부결이 확정될 경우 선장 잃은 그리스의 정국은 상당 기간 혼돈 양상에 빠질 전망이다. 여기서도 이정표는 엇갈린다. 먼저 그리스 여야가 거국내각 구성에 실패하는 경우 조기선거를 실시해 새 정부를 수립해야 하는데 그 사이에 리더십 공백상태가 지속되면서 구제금융 절차 이행이 계속 지연될 수 있다. 위기의 진원지 그리스의 불확실성은 또다시 유로존 전체의 발목을 잡을 것이고 새로 구성된 정부가 유로존과의 기존 합의를 지키리라는 보장도 없다. 결국 그리스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지 못해 위기 확산 우려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이 장기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의회 해산을 선택하지 않고 거국내각 구성에 합의하는 제2시나리오로 간다면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다. 의회가 일단 구제금융안을 승인해 분노한 유로존을 달랜 다음 조기선거를 치르게 되는데, 중단됐던 구제금융을 계속 받을 수 있게 돼 총리 사임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파판드레우 총리에게나 유로존에게나 가장 좋은 결과일 제3시나리오. 그가 신임투표에서 승리한 다음 의회 표결로 국민투표를 대체하는 경우다. 독일과 프랑스가 지급을 보류한 1차 구제금융 6차분(80억유로)의 지급이 재개되고 그리스의 희생과 동의를 전제로 하는 유로존 구제금융 계획도 정상궤도로 돌아갈 수 있다. 유로존도 한숨을 돌리고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증액 등 다른 구제금융 이슈에 전념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일이 잘 풀린다 해도 이번 돌발사태 때문에 파판드레우 총리가 나라 안팎의 신뢰를 상당히 상실한 점을 감안하면 상황은 지난달 26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직후보다 나아진 게 없다. 로이터통신은 "파판드레우 총리가 살아 남더라도 국민투표 후폭풍 때문에 단명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떤 경우라도 파판드레우 총리는 사임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파판드레우 총리가 살아남아 국민투표 절차를 계속 밟는 경우인데, 그가 3일 의회 연설을 통해 국민투표를 다른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에 이 계획은 사실상 가능성 제로인 '죽은 아이디어'로 평가받고 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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