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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남해 소매물도에 관세역사관이 있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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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남해 소매물도에 관세역사관이 있는 이유는?

입력
2011.11.0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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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예능프로그램 '1박2일' 애청자라면 하얀 등대가 인상적인 소매물도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이국적 풍광 덕에 유럽풍 과자 광고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 등대섬이 가장 멋있게 보이는 장소가 경남 통영시 소매물도 망태봉(해발 152m) 정상인데 바로 그곳에 새로 개관한 하얀 외관의 '관세역사관'(사진)이 있다.

소매물도를 찾은 관광객들은 대부분 이곳에 관세역사관이 자리잡은 이유에 대해 의아해한다. 하지만 이곳은 1980년대 중반까지 수입 금지품목인 일제 전자제품과 녹용을 몰래 들여와 한몫 챙기려는 밀수꾼과 이를 적발하려는 관세당국이 팽팽하게 대치하던 최전방이었다.

1960년대 기승을 부리던 일본 쓰시마섬(對馬島)을 근거지로 한 특공대식 밀수단이 근절되자, 1970년대부터 일본에 활어를 수출하는 어선이 밀수품을 공급하는 주요 수단으로 떠올랐다. 관세당국은 이들의 밀수를 막기 위해 모든 대일 활어수출선 및 냉동운반선이 귀국할 때 반드시 거제도 장승포항에서 입항 검사를 받도록 조치했는데, 밀수꾼들은 쓰시마섬을 거쳐 장승포항에 도착하기 전 다도해 섬 사이에 숨어 밀수품들을 옮겨 싣는 방식으로 당국의 감시를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밀수를 감시하기 위해 1978년 7월 매물도감시서가 설치된 것. 매물도는 쓰시마섬과 밀수품의 주요 종착점인 통영(당시 충무) 여수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이곳 감시서에 설치된 레이더로 일본서 돌아오는 어선들이 정해진 해로를 벗어나거나 예정보다 항해시간이 지체되는지 여부를 한눈에 감시할 수 있었다.

1979년말부터 11개월간 매물도감시서에서 근무했던 팽상원 부산세관 계장은 "활어선은 주로 밤에 귀국하기 때문에 4명의 직원이 교대로 밤을 세우며 레이더 모니터를 들여다 봐야 했다"며 "여름엔 물이 부족해 제대로 씻지 못하고 겨울엔 외해서 불어 닥치는 칼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한다. 팽계장은 "당시 최고 인기 밀수품목은 단연 24장짜리 필름을 끼우면 반으로 나눠 48장을 찍을 수 있는 올림푸스 카메라였다"며 "당시 일본에서 정가가 7만~8만원이었는데 한국에 오면 15만~20만원을 호가하는데다 부피도 작아 밀수꾼에겐 황금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밀수 어선 한 척당 당시 돈으로도 수억원어치 밀수품이 실려 있었으니 세관원과 밀수꾼의 추격전은 필사적이었을 수 밖에 없다.

한편 매물도감시서 설치가 당시 매물도 주민 40여가구에게는 문명과의 만남이었다. 매물도감시서 운영을 위해 설치한 발전기를 통해 처음으로 집마다 전등을 밝힐 수 있었고, 감시서에 설치한 빗물저수조를 통해 처음으로 수도가 개설됐다. 고맙고 건장한 청년 세관원은 자연스럽게 섬마을 처녀들 선망의 대상이었으리라. 결국 팽 계장 후임으로 이곳에 온 황 모 반장은 이장댁 딸과 결혼해 섬마을 사랑의 전설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경제국경의 최전선이었던 매물도감시서는 컨테이너의 출현 이후 주요 밀수루트가 컨테이너를 이용한 합법가장 수법으로 변화하면서 그 역할이 축소되면서 1987년 4월 폐쇄됐다. 이후 방치되다 지난달 말끔히 단장해 관세역사관으로 부활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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