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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600만 시대/ (하) 대책만 내고 실행않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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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600만 시대/ (하) 대책만 내고 실행않는 정부

입력
2011.11.0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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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자리만 늘리면 된다" 비정규직법 만들고 '차별' 단속 손놓아

'기간제근로자(비정규직)는 같은 사업장에서 동종ㆍ유사업무에 종사하는 무기계약근로자(정규직)와 차별하면 안된다.' '파견근로자는 동종ㆍ유사업무 근로자와 차별하면 안된다.' 우리의 노동법은 외형상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최고 2,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정도로 처벌도 엄하다. 차별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절차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제도를 비웃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는 줄기는커녕 벌어지기만 한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기만 할 뿐 집행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만 늘리면 된다'는 단순논리로 정부는 비정규직의 확산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구멍 뚫린 비정규직법

2007년 7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기본법이다.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함으로써 비정규직의 남용을 막자는 취지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차별을 막지 못하는 제도적 결함이 적지않다.

대표적 독소조항은 파견법의 고용의무조항. 과거에는 2년 이상 일한 파견노동자를 '원청회사가 직접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했지만, 2007년 '원청이 직접 고용할 의무가 생겼다'고 바뀌었다. 개정 전에는 파견노동자를 2년 이상 쓰지 않기 위해 복잡한 해고절차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이들을 고용하지 않고 벌금으로 때울 수 있다.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옛 조항을 근거로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법원이 노동자 손을 들어주자 현대자동차는 최근 아예 헌법소원을 냈다.

차별금지의 비교대상을 '같은 사업장 내의 정규직 노동자'로 한정한 것도 악용되고 있다. 기업들은 과거 비슷한 일을 하던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다른 업무를 맡도록 함으로써 차별금지조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신한은행, 국민은행, 우리투자금융, 농협투자증권 등이 2007년을 전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직무를 분리했다. 노동계는 '왼 바퀴를 끼우는 정규직과 오른 바퀴를 끼우는 비정규직'(자동차업계),'숫소를 도축하는 정규직과 암소를 도축하는 비정규직'(도축업계)이라며 법의 허점을 비판하고 있다.

비정규직(기간제) 사용의 제한요건이 없는 점도 비판의 도마에 오른다. 기업들은 2년의 비정규직 사용제한 기간을 폐지하고 외국처럼 무기한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하지만, '객관적 사유'가 있어야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외국(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등)의 사례는 언급하지 않는다.

"일자리 아닌 가난을 배분하는 대책될 것"

비정규직 차별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지난달 비정규직 대책을 내놨지만 안이한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잠자고 있는 차별시정제도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인데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차별처우신청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로 한정된 현 제도를 보완해 제3자인 근로감독관에게 '시정명령권'을 주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 그러나 해고를 각오해야 하는 신청자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조에 신청권을 줘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한국철도공사를 상대로 비정규직 차별시정심판을 진행했던 공공운수연맹 양현 법규부장은 "차별시정신청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회사 관리자들은 당사자에게 '뭐하러 그런 것을 넣느냐. 당장 취하하라'는 압력을 넣었다"며 "압력에 못견뎌 중간에 심판을 취소한 분도 여럿"이라고 말했다. 노동계 관계자는 "고용부는 최저임금, 근로기준법 감독 등 지금도 근로감독관이 해야하는 일을 인력부족을 핑계로 등한시하고 있다"며 "강력한 단속의지가 없는 한 오히려 현장 감독관들은 일이 늘었다며 불만만 표시할 것"이라고 회의를 표시했다.

상용형 파견제도를 활성화하겠다는 방안도 집중적으로 비판 받고 있다. 현재 파견노동자들은 90% 이상이 사용업체(원청)와 파견업체의 계약이 끝나면 일자리를 잃는다. 그러나 상용형 파견은 파견업체가 사용업체와 계약이 끝나도 파견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관계는 유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이는 '파견제한기간'을 풀어 비정규직을 남용하겠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이승철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우리나라 노동법은 간접고용을 통한 중간착취를 금지하는 것이 기본정신"이라며 "안정된 일자리를 줄이고 질 나쁜 일자리를 확산시키려는 것이 정부 비정규직 대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이런 대책들이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공식 고용전ダ?'국가고용전략 2020'의 철학에서 비롯된다. 이 전략은 '파견허용업종 조정',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제한조정', '상용형 시간제 일자리 확산' 등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전략을 따르면 극단적인 노동유연화로 비정규직 사용만 늘 것이고 결국 기업에만 이윤이 돌아갈 것이라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윤애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은 "현 정부 들어 그나마 상황이 나은 공공부문에서도 안정적인 일자리가 급속히 줄고 불안정한 일자리들이 빠르게 양산되고 있다"며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골고루 배분하는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독일 '노동시장 유연화' 하르츠개혁의 그림자

'처우가 나쁘더라도 일단 일자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vs '안정적이지 않은 일자리는 사회 불평등만 부추길 뿐이다.'

9년째 독일 사회를 달구는 주제다. 노동문제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조치인 '하르츠개혁'때문이다. 이는 2003년 진보성향의 정부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추진했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으로, 파견노동 상한기간 폐지 등 파견노동의 규제를 풀어 고용 창출을 꾀한다는 취지로 추진됐다. 2002년 총선을 앞두고 복지개혁위원장을 맡아 이 개혁안을 만든 폴크스바겐 관리 이사 출신인 페터 하르츠의 이름을 따 독일 내에선 '하르츠피어'(하르츠Ⅳ)라고 불린다.

우리 재계는 흔히 하르츠피어를 임금안정과 일자리창출의 성공적인 사례라고 추어올린다. 하지만 그 열매가 달지만은 않다. 당시 의회의 경제사회자문그룹 위원으로서 개혁 논의에 참여했던 베를린주정부 정책연구기관의 레나 힙 전임연구원은 "하르츠개혁의 취지는 저임금 노동시장을 활성화시켜 실업자들에게 처우가 좋지 않은 일자리라도 얻도록 하자는 것이었지만 임금분배의 불평등, 워킹푸어(노동빈곤층) 양산 등 문제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각종 수치가 이를 확실히 보여준다. 독일 사용자단체의 싱크탱크인 쾰른경제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독일 전체 노동자 중 기간제노동자는 1998년 8.4%였지만 2006년엔 10.8%를 기록했다. 파견노동자 수도 1990년대 초에는 약 13만명으로 전체 고용인구의 약 0.4% 수준이었으나 2008년엔 약 80만명으로 늘어났다. 하르츠피어로 생긴 '미니잡'(월 상한급여가 400유로인 일종의 파트타임 노동)도 2003년 약 550만명이었던 규모가 현재는 약 700만명 수준으로 불어났다. 하르츠피어가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해왔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최근까지도 이런 추세는 이어져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09~2010년 늘어난 임금노동자 32만 2,000명 중 75%가 파견 노동이나 기간제 등 저임금직종이었다.

결국 독일은 올해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근로자파견법을 개정해 파견 노동의 최저임금을 강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노조와 사용자단체가 단체협약을 통해 파견직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합의하면 노동사회부가 이를 법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진대 강사인 김기선 박사는 9월 <노동정책연구> 에 게재한 논문 '독일근로자파견법의 개정과 시사점'에서 "독일의 근로자파견법의 변화는 파견근로의 유연성과 안정성의 균형을 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며 "파견근로의 규제완화를 검토하기에 앞서 파견근로의 남용을 규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이 우선적으로 확보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은 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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