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령 하는 밤/강영숙 지음/창비 발행ㆍ244쪽ㆍ1만1,000원
강철의 조각품처럼 보이는 현대 문명이 비탈 위에서 얼마나 잦바듬하게 서 있는지 폭로되는 순간이 바로 재난을 당했을 때가 아닐까. 압도적 자연의 힘과 무력한 인간이란 전통적 두려움을 넘어 문명 자체가 핵 위험의 불안을 끼고 산다는 사실을 선명히 환기시켰던 올해 3월 일본 도호쿠 대지진처럼. 재난은 그러기에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적 알레고리로서 작가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소재이기도 했다.
한국일보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받은 중견 소설가 강영숙(44)씨의 네 번째 소설집 <아령 하는 밤> 은 이 재난의 상상력을 집결한 듯한 작품이다. 수록된 9편의 단편 중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문래에서'는 구제역이 퍼지는 과정을 서늘하게 그리고, '재해지역 투어버스'와 '라디오와 강'은 허리케인과 대홍수가 휩쓸고 간 뒤의 도시 풍경을 담은 단편. 다른 단편들에서도 주인공들이 도시에서 감지하는 것은 마른 먼지 냄새, 축축하고 비린 듯한 쇳내, 황사와 산성비, 흘러 넘치는 분비물, 깨진 유리조각, 시멘트를 비추는 흰 불빛 등이다. 소설집 전체는 그러니까 눅진한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버려진 도시 뒷골목을 배회하는 자가 그려낸 음산한 풍경화를 닮았다. 이 텁텁한 환경의 주인공들은 정체 모를 불안과 악몽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아령>
'죽음의 도로'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여성이 강변북로에서 자살을 감행하려다 실패하는 과정을 강박적으로 그리고, '불안한 도시'는 이혼한 아내가 실종된 후 그녀의 흔적을 찾아 도시를 배회하는 남성의 불안한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표제작 '아령 하는 밤'은 오염된 도시 환경 속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을 다루는데, 특히 도시의 악몽 같은 풍경 속에 도사린 인간의 욕망까지 숨김 없이 파고 들어 흥미롭다. 소설집은 아울러 문래, 강변북로, 광화문광장, 옥인동, 황학동 등 서울의 구체적 지명을 등장시켜 현실감을 더한다. 작가는 '문래에서'와 '프리퍄트 창고'에선 도시의 황량한 세계를 견디는 통로로서 예술적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하기도 한다.
평론가 백지연씨는 "도시의 황막한 풍경들은 장소적 정체성을 갖지 못한 채 떠도는 현대인들의 고단한 일상을 숨김 없이 담아낸다"며 "악몽들을 천천히 통과한 그의 소설은 오랜 배회의 여정 끝에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깨달음에 다다른다"고 평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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