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나무가 자라는 나라(남유럽 국가)에서는 절대 세금을 많이 모을 수 없다.”
스페인 남부의 한 소도시 시장이 만연한 탈세 풍조를 개탄하며 한 말이다. 지역에 대한 편견처럼 들리던 그의 푸념은 통계로 입증됐다.
CNN 방송은 3일 ‘남유럽에서는 탈세가 국민적 오락’이라는 기사에서 “남유럽에서는 세원이 노출되지 않는 지하경제의 비중이 유난히 높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슈나이더의 보고서를 인용해 이탈리아의 지하경제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22.3%, 스페인은 19.3%, 포르투갈은 19.2%에 달한다고 전했다. 유럽 재정위기의 진원지 그리스는 무려 25.1%였다. 집요한 탈세 추적으로 이름 높은 국세청(IRS)이 저승사자와 같은 위세를 떨치는 미국의 지하경제 비중 7.2%와 비교하면 3, 4배나 많다.
문제는 이 나라들이 하나같이 재정위기를 겪으며 구제금융을 받거나 받을 위기에 처했다는 점. 이 네 나라 이름의 앞 글자를 딴 PIGS에는 ‘내부 개혁은 하지 않고 북유럽에 손만 벌리는 돼지’라는 경멸의 의미도 담긴 게 사실이다.
CNN 방송이 전한 남유럽 국가의 탈세 실태는 심각하다. 줄리오 트레몬티 이탈리아 재무장관은 “이탈리아에서 100만 유로(15억 3,400만원) 이상의 소득신고를 한 사람이 800명밖에 안 된다”고 밝혔다. 주요7개국(G7) 회원국이자 유로존 3위인 경제규모를 생각하면 터무니 없이 적은 숫자다. 이탈리아 정부는 올해 미신고된 소득규모를 3,200억달러(356조원)로 추산한다. 이 중 10%만 세금으로 거둬도 이탈리아의 재정문제가 획기적으로 해결될 수 있지만, 정부의 탈세 추적 의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세금이 너무 높아 탈세는 ‘권리’가 되어 버렸다”고 말했을 정도이니, 이탈리아 정부의 허리띠 졸라매기 의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유로존 긴급지원 자금 80억 유로가 없으면 국가부도 사태를 겪는 그리스에서 매년 탈루되는 세금은 300억 달러다. 반면 그리스 한 소도시에서 최고급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인 포르쉐 카이엔의 인구 비율 보유 대수는 세계 최고다. 스페인 세무당국은 주택임대료 소득을 신고하지 않은 20만명을 추적 중이다. 고액권인 500유로 지폐의 4분의 1이 스페인 한 나라에서 유통되는데 상당수가 건설사 등의 탈세 용도로 쓰인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