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달 26일 방송심의 소위원회를 열고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스피드 특집 편을 17일 열릴 전체회의에 상정해 제재 수위를 논하기로 했다. 차량 폭파 장면이 모방의 여지가 있다는 게 주요 이유다. ‘무한도전’은 지난 9월에도 방통심의위의 징계를 받았다. 자막으로 표현된 ‘대갈리니’, ‘원펀치 파이브 강냉이 거뜬’ 등이 문제로 지적됐고, 전체 회의 참석 위원 8인의 만장일치로 법정 제재에 해당하는 ‘경고’ 조치를 받았다. 2008년 2월 방통심의위가 발족한 이래 ‘무한도전’이 받은 제재는 총 9건이나 된다. 이쯤 되면 방통심의위가 ‘무한도전’만 미워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생길 만도 하다.
언뜻 통계자료로만 따지면 ‘무한도전’이 억울해할 상황은 아니다. KBS 예능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1박2일’은 지금까지 총 13건의 제재를 받았고, SBS ‘일요일이 좋다’는 10건을 기록했다. 세 프로그램 모두 ‘경고’와 ‘주의’를 합쳐 3건의 법정 제재를 받았다. 법정 제재는 방송사의 방송 재승인 심사 점수에 반영되기에 중징계로 해석된다.
하지만 심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일요일이 좋다’가 기록한 제재 회수 10건은 프로그램 속 코너인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골드미스가 간다’, ‘영웅호걸’ 등이 받은 제재를 합산한 수치다. ‘1박2일’은 차량 탑승 중 안전띠 미착용 등의 법규 위반과 간접광고, 방송 자체와는 무관한 자막, 편집 실수로 노출된 흡연 장면, 청소년유해매체물(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Creep’) 등 절반 이상이 프로그램의 고유한 특성과 무관한 것들이다.
‘무한도전’이 제재를 받은 9건 중 간접광고 2건을 제외한 7건은 모두 ‘품위유지’ 위반에 해당한다. 다른 예능프로그램보다 방송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지적과 제재가 많았던 셈이다. 이에 대해 권혁부 방통심의위 부위원장은 “예능 프로그램이라 해도 어느 정도 품위 유지는 필요하고 지상파 방송은 더 엄격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며 “유사한 내용이 개선되지 않고 반복되면 심하게 제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무한도전’이 품위유지 조항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재를 받는 데에는 ‘상습범’이라는 꼬리표가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무한도전’에 대한 방통심의위의 심의를 대체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기형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무한도전’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사회ㆍ문화적 배경과 장르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절름발이 행정”이라고 꼬집었다. 대중문화평론가 차우진씨 역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품위를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코미디”라며 “중요한 것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라 태도”라고 강조했다.
‘무한도전’이 품위유지에 대해 방통심의위의 반복적인 지적을 받는 데에는 프로그램 고유의 특성도 무시할 수 없다. ‘무한도전’의 핵심 중 하나는 어린이 같은 멤버들의 캐릭터다. 멤버들은 종종 아이들처럼 서로를 놀리고 장난을 친다. ‘대갈리니’, ‘뻥쟁이들아’, ‘진짜 못생겼다’ 등의 다소 저속한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닌 것이다. 이기형 교수는 “‘무한도전’은 대본이 있는 즉흥극과도 같다. 멤버들은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개성을 토대로 의도적인 소동극을 펼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당극에서 육두문자가 사용되듯 ‘무한도전’에서 쓰는 단어에는 코믹하면서도 전복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심재웅 숙명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사용되는 단어가 저속한 표현일 수 있지만 단순한 의미보다는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방통심의위가 폭파 장면을 문제 삼은 것도 ‘무한도전’의 장르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상식 밖의 처사라는 지적이 많다. 심재웅 교수는 “시청자들은 ‘무한도전’이 오랫동안 방송되면서 구축한 장르적 틀을 이해하고 보기 때문에 제작진의 의도를 충분히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한도전’은 그 동안 영화와 드라마를 비롯해 예능 프로그램, 가요제, 토론 프로그램, 법정공방 등 다양한 장르와 사회 현상을 패러디하며 사실성과 허구를 오가는 시도를 해 왔다.
‘무한도전’은 방통심의위의 제재와 관련해 지난 9월 24일 방송에서 ‘품위유지’라는 자막을 넣어 간접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열 번째 제재 결정을 앞둔 요즘은 매우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김태호 PD는 전화 통화에서 “지적 받은 표현에 대해 앞으로 유의해서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화경 CP도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기에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 조심을 하도록 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무한도전’은 시청률 하락을 각오하고 품위유지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을까.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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