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2일 정상회담에서 남ㆍ북ㆍ러 가스관 연결사업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나라 안팎 반응은 시들하다. 9월 양국간 체결된 양해각서 수준에서 별로 나아간 게 없는 탓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으로부터"가스관 북한 통과에 따른 위험은 전적으로 러시아가 책임진다"는 다짐을 받은 것은 성과이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얘기는 없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8월 남ㆍ북ㆍ러 가스관 사업을 통해 남북관계 새 지평이 열릴 것이라며 띄웠던 애드벌룬이 좀 멋쩍게 됐다.
■ 러시아 가스를 육로를 통해 들여오는 것은 이 대통령이 현대건설 CEO시절부터 꿈꾸던 사업이다. 대선 전에 쓴 그의 자서전 에는 1980년대 후반에 추진했던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 경험이 소개돼 있다. 시베리아에서 생산되는 가스는 유럽에는 너무 멀어 팔 수가 없는 만큼 한국을 위해 존재하는 자원이라는 말도 나온다. 가스관 연결을 통해 연해주, 중국 동북3성, 남북한을 포괄하는 동북아 경제권 형성의 밑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최근 한ㆍ러 및 북ㆍ러 양자 협상의 진전으로 그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 문제는 북한이다.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에서는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가스공급 가격과 가스관 건설조건 등도 까다로운 문제지만 북한의 변화를 끌어 내기가 더 어렵다. 군사안보상 이유로 북한지역 가스관 건설에 외부 참여를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가스관 통제와 관리권 행사 주체 문제도 있다. 가스관 차단 등 대남 위협의 지렛대로 악용하는 것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다짐 대로 러시아가 책임지면 된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유지된다면 연간 1억~1억5,000만 달러에 이를 통과료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 하지만 발상을 달리해볼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의 기본 개념은 북한의 핵 폐기와 체제보장 및 경제지원을 맞바꾸는 것이다. 남ㆍ북ㆍ러 가스관 연결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잉여 전력은 북한의 핵 폐기에 상응하는 에너지 보상의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가시적인 보상의 이익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면 북한의 경직된 태도도 달라질 것이다. 변하지 않은 북한에 큰 이익을 주거나 새로운 대남위협 수단을 안겨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근시안적이다. 이 대통령의 원대한 꿈인 남ㆍ북ㆍ러 가스관 연결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길을 열어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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