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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촉진 고집하는 민영일 비에비스나무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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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촉진 고집하는 민영일 비에비스나무병원장

입력
2011.11.0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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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3분 진료'는 종합병원만의 얘기가 아니다. 동네 의원도 비슷하다. "어디 불편하세요" "언제부터였죠" "부작용 있는 약은요" 등 '공식' 같은 질문 몇 마디 하고는 처방전 써주는 곳이 적지 않다. 심지어 환자와 눈 한번 제대로 안 마주치고 모니터만 쳐다보는 의사도 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소화기전문 비에비스나무병원의 민영일(70) 대표원장은 이런 진료 관행에 일침을 놓는다. 그가 환자를 대하는 기본은 '스킨십'. 일단 만져본다. 손은 어떤 첨단기기보다 귀한 의사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왜 꼭 만져야 하나

"환자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진찰 시작이죠. 걸음걸이랑 얼굴부터 봐요. 소화기 문제는 걸을 때나 표정에도 영향을 주니까요. 그리곤 배를 직접 만지고 두드려봐요.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덩어리가 있는지, 단단한지 말랑말랑한지, 따뜻한지 차가운지 일일이 확인하죠."

민 원장이 진찰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약 15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촉진이다. 소화기질환은 특히 촉진으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많다. 오른쪽 아랫배에서 동전 크기만한 특정 위치를 눌렀을 때 환자가 아파하면 충수염(맹장염), 배를 건드리기만 해도 통증을 느끼면 복막염, 왼쪽과 오른쪽 윗배가 아프면 각각 급성췌장염과 담낭염을 의심해볼 수 있다. 오른쪽 윗배에 있는 간이 커진 상태면 뭔가 문제가 생긴 걸 테고,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아야 할 왼쪽 윗배에 덩어리 같은 게 있다면 종양일 가능성이 있다.

"환자에게 말도 많이 시켜야 해요. 환자가 얘기하는 증상이 진단에 결정적인 단서가 되죠. 예를 들어 배를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이 아프다고 하면 대부분 큰 문제가 없어요. 창자 속에 들어 있던 공기가 갑자기 움직이면서 일시적으로 생기는 증상이거든요. 또 배가 아프다 안 아프다 반복된다 하면 장이 막혔거나 경련이 일어난 경우죠."

검사기기 없이 문진과 촉진, 시진, 청진, 타진 같은 기본 진찰만으로도 무슨 병인지 80%는 짐작할 수 있다고 민 원장은 강조한다. 기계는 이렇게 짐작한 결과를 확인하는 용도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의사들 기계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요. 촉진 문진 등엔 점점 소홀해지고요. 의료가 점점 상업화하기 때문이겠죠. 더 많은 환자를 봐야 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니 진료 시간은 짧아지고 기계를 이용한 검사는 늘고…. 하지만 기본 진찰이 뒷받침되지 않은 검사에는 오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안티 테크노필리아

"밥을 잘 못 드시는 할아버지 환자가 X선을 찍었는데 식도에 웬 덩어리가 보였어요. 암 같았죠. 실제로 방사선과에서도 암이 의심된다고 했다더군요. 어제 뭐 하셨냐고 물었더니 식구들과 외식 잘 하고 오셨대요. 그 얘기 한 마디로 암이 아니란 게 확실해졌죠."

식도에 그 정도 암 덩어리가 있다면 전날 외식은 고사하고 계속 뭘 제대로 먹질 못했을 테니 말이다. 알고 보니 그 덩어린 잘 씹히지 않은 고깃덩어리였다. 내시경으로 부쉈더니 금새 내려갔다. 문진이 없었다면 검사만으론 큰 병일 거라 오인할 수 있었다. 반대로 환자는 아프다 호소하는데 검사에선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검사에 의존하는 의사일수록 사진 몇 장 찍어보고 '이상 없다'는 말을 참 쉽게 합니다. 환자 입장에선 답답할 노릇이죠. 기계에선 이상 없다 나와도 환자가 아프다 하면 이유를 근본적으로 캐야 해요."

간단한 예로 과민성대장증후군 같은 병은 대부분의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온다. 환자가 긴장이나 스트레스 상황이라는 걸 문진으로 파악해야 진단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영상검사가 너무 많다는 지적은 최근 들어 꾸준히 나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3~2007년 국내 CT 검사 건수는 2배 이상 늘었다. 기술을 좋아한다는 뜻의 '테크노필리아'란 말까지 의료계에 등장했다. "기본 진찰에만 충실해도 불필요한 검사를 훨씬 줄일 수 있다"는 게 민 원장의 신념이다.

환자와 의사의 상호신뢰가 기본

기본 진찰도 경험이 중요하다. 많이 할수록 정확해지고 요령이 생긴다.

"만졌을 때 너무 아프다며 엉엉 우는 환자가 간혹 있죠. 그런데 배가 진짜 아프면 울기는커녕 끙끙 소리도 못 내요. 촉진 문진 오래하다 보면 꾀병도 가려집니다. 또 꼬치꼬치 사소한 것까지 따져 물어야 진단에 필요한 진짜 증상을 선별해낼 수 있어요."

옛날에야 동네 할아버지 의사가 배를 이리저리 꾹꾹 눌러보는 일이 흔했지만 촉진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한 요즘 젊은이들에겐 낯설 수 있다. 실제로 얼마 전 배가 아파 찾아온 한 젊은 여자연예인이 촉진이 처음이라며 놀랐다고 한다.

"특히 촉진은 환자와 의사가 교감하는 수단이 됩니다. 믿음을 주지요. 환자의 이런 심리는 치료 효과로도 이어져요."

최근 의료계의 화두인 '라포르(rapport)'다. 상호 신뢰관계를 뜻하는 심리?용어가 환자와 의사 간 교감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새로울 거 없다. 기본에 충실하면 라포르는 따라온다고 종심(從心) 의사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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