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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직원이 버린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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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직원이 버린 회사

입력
2011.11.0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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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업 전사다. 전사의 숙명을 드높이 받들어 당연히 전 세계와 싸워 이길 것이다. 승리를 위해선 밤잠 안 자는 것도 좋고 집에 안 들어가는 것도 좋다. 아이디어를 짜내다 머리가 팍 빠개져도 좋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회사를 세상에 우뚝 세울 것이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던 시기인 1980년대 말 기업에 입사했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이토록 자신의 회사에 대한 성스러운 충성심으로 충만했다. 운명공동체로 여겼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이제 세월의 강을 뚝 건너 요즘 젊은이들을 보자. '회사? 난 모르겠다. 별 생각 없다. 그냥 먹고살기 위해 다니는 곳 아닌가? 당연히 일이야 안 잘릴 정도로 적당히 하면 되는 것이다. 돈 더 주는 곳 있으면 옮기면 그만이다.'

최근의 한 여론 조사 결과는 한 세대 만에 지독히 달라진 젊은이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250명을 대상으로 '현재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은 결과, 53.3%가 '돈을 벌기 위해서'를 선택했다. 다음은 '일단 일을 시작한 만큼 경력을 쌓기 위해서'(23.6%)였다. 스펙이라도 만들기 위해 할 수 없이 한다는 얘기.

사소하게 보이지만 사실 이런 변화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사원들이 기꺼이 밤샘을 할 각오가 없는 기업이, 아이디어를 위해 머리 박살의 지난한 과정을 견뎌 낼 생각이 없는 기업이 절대 세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더 심각한 것은 기업의 경쟁력 저하가 국가 경쟁력 약화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국가라는 것이 원래 기업이 벌어서 먹여 살리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극적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기업 행동 양식의 변화일 것이다.

과거 기업은 국가 발전이라는 공적 비전을 제시했다. 바로 사원이 충성하면 기업이 살고, 기업이 살면 한국이 선진국으로 간다는 비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충분히 효과를 거뒀다. 한국인은 원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지 않은가. 나라를 사랑하기에 그 근간인 회사도 이 한 몸 바쳐 사랑했다. 사회 비판적인 운동권 출신들도 대개 이런 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 대충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기업들은 어떤가. 모두 자기 이익만 맹렬히 추구하고 공적 비전은 전혀 내놓지 못한다. 그래서 직원들이 우리 기업이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안 한다. 결국 충성심을 보일 소소한 여지조차 없어진 것이다.

물론 기업들에게 과거 같은 국가 성장론적 비전을 제시하란 얘긴 아니다. 이 비전은 이제 효용성을 다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원들은 뭐 이런 구식 기업이 있냐고 혀만 찰 것이다. 결국 21세기에 맞는 비전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 사회의 새 화두는 복지와 사회 기여다. 사원들이 다시 기업에게 마음을 되돌릴 수 있게 하기 위한 중요한 접점인 동시에 시민들의 대기업 이미지를 제고할 기회여서 기업들도 신경을 쓰는 것 같다. 하지만 그냥 시늉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복지와 사회 기여가 그저 공염불로 들리지 않게 하려면 이를 기업 정책의 제1과제로 제시하고 기업을 운영 체제 전반을 바꿔야 한다.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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