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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600만명 시대/ (중) 차별금지규정 비웃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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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600만명 시대/ (중) 차별금지규정 비웃는 기업들

입력
2011.11.0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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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시정 요구땐 눈엣가시로… 해고 후 복직 판결 나도 '파리목숨'

"복직하는 날 인사부에 갔더니 앉기도 전에 다른 부서로 가라고 하더군요. 못나가겠다고 했더니 2주만에 해고시켰습니다." 1996년 하나은행에 입사했다가 2007년 해고된 차윤석(46)씨. 비정규직 차별폐지를 요구하다 11년 직장생활 동안 3번이나 '잘린' 차씨의 사연은 입으로는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며 뒤로는 비정규직 남용에 앞장서는 기업들의 모순적 행태를 보여준다.

차별시정 결정나면 소송

"성실한 은행원이 되자"는 꿈을 품고 직장생활을 하던 차씨의 행로가 어그러지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정규직으로 입사한 차씨에게 회사는 3년 계약직으로 바꾸자고 했고, 내키지 않았지만 '회사 방침'이라는 종용에 사인을 했다. 재계약 시점인 2004년 말 회사는 1년 계약직 전환으로 더 무리한 요구를 했다. 동기 중 승진도 가장 빨라 능력을 인정받는다고 자부했던 터라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통보였다.

노동부에 진정을 내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1년 반만인 2006년 6월 복직을 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회사는 복직 당일 상의도 없이 그를 낯선 부서로 전보조치했고, 이에 항의해 출근을 거부하는 그를 2주만에 해고했다. "드디어 회사가 나를 받아주는구나. 열심히 해보자"고 결심했던 터라 충격은 더 컸다. 전보조치가 부당하다며 다시 소송을 냈지만 회사는 항소와 상고로 버텼고 대법원에 가서야 복직을 시켜주었다. 그동안 차씨는 불면증에 화병까지 앓고, 칫솔공장 생산직,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활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복직의 기쁨은 잠시뿐. 차씨를 눈엣가시로 여긴 회사는 두번째 복직 두 달 만인 2007년 3월 무단결근을 이유로 그를 다시 길거리로 내쫓았다. 해고무효소송에서 져 복직의 길이 영영 막혔다. 금융기관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활동하고 있는 차씨는"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높아지자 회사는 단순히 직무를 세분화해 임금을 차별하는 편법을 쓰고있다"며 "비정규직인 창구직원들과 넥타이 매고 뒤에 앉아있는 정규직 직원 중 회사에 누가 더 기여하는지 판단할 근거를 대라"고 주장했다.

일자리 걸고 차별개선 요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위원회를 통해 차별시정을 요구할 수 있지만 생계를 포기할 각오가 없이는 선뜻 나설 수 없다. 노동위원회에서 차별시정 결정을 내리면 회사는 소송으로 맞선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6년 간의 다툼 끝에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현대차가 직접고용하라'는 판결을 끌어냈다. 하지만 회사는 아직 한 명도 고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법원 판결의 근거가 된 옛 파견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차별시정이나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비정규직들에게 회사가 소송으로 맞서는 것은 민간사기업이든 공공기업이든 다를 게 없다. 한국철도공사를 상대로 한 KTX 여승무원들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2008년), 한국철도공사 비정규직 영양사들의 성과급ㆍ효도수당 지급소송(2007년), 농협중앙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2009년), 한국철도공사 무기계약직 장기근속수당 지급소송(2010년) 등은 지금도 법원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차별개선을 감독하는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무기계약직 직원들도 지난달 차별철폐를 요구하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2010년 4만1,148명이었던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은 올해 4만5,977명으로 늘었다. 이상원 한국노총 비정규직 부위원장은 "정부가 말로는 비정규직 차별에 앞장서겠다고 하지만, 예산 핑계를 대면서 감독강화나 제도개선을 미루고 있다"며 "정부의 해결의지가 엿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기업, 비정규직 쓰려면 정당한 몫 내야

기업들이 비정규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는 경기변동에 대응할 고용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없어져야 할 일자리로 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기업들은 비정규직에게 낮은 임금을 지불하며 비용절감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프랑스의 경우 파견노동자를 사용했을 경우 계약해지시 1개월 만큼의 퇴직금을 지불해야 한다. 네덜란드 파견노동자의 평균시간급(15~19세ㆍ남성)은 6.93유로로 전체 노동자 평균(6.23유로)보다 많다. 반면 우리나라 파견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의 53.9%(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사용은 장기적으로 서비스의 품질을 떨어뜨려 생산성저하로 이어진다는 반론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발달한 사내하청(하도급)의 경제적 효과와 관련,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내하청은 단기적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데에서 비롯되며, 결국은 일자리 창출력 약화, 일자리 질의 저하 등 고용성과만 악화된다"고 분석했다. '사내하도급 활용실태와 경제적 효과'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04~2008년 사내하청 미사용업체의 1인당 영업이익률은 2004년 30.2%에서 2008년 45.2%로 증가한 반면 사내하청 사용업체는 같은 기간 이익률이 153.9%에서 86.0%로 감소했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 기업은 인력활용의 유연성을 내세워 비정규직을 쓰면서, 고용불안을 전가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비정규직이 불가피하다면 정당한 임금을 주고, 초과이윤이 있으면 좋은 일자리창출로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노원·관악구 정규직 전환 후 '비용 ↓ 효율 ↑'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비정규직 일자리만 늘린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최근 일부 지자체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는 1월 민원업무 처리, 안내, 청소 직원 14명을 산하 시설관리공단에서 직접 채용했으며 2년 기간제 근무 뒤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또 2월에는 용역업체 직원 22명을 추가로 공단직원으로 채용했다. 이밖에 시설관리, 요양보호사, 청소 직원 등 49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구는 비용부담은 오히려 줄었다고 설명한다. 구는 "그동안 용역업체에 지급되던 5~30%의 관리비를 근로자와 구청이 나눠 근로자 임금은 평균 13% 인상되고, 구청 예산은 15% 절감되는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서울 관악구의회 사무처는 4월 업무보조로 2005년 11월부터 근무해온 기간제 근로자 신모(27)씨를 뒤늦게 상용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기간제 법을 준수했다. 신씨는 총 근로기간이 6년이 넘었지만 기간제법에 맞게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다가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야권 구의원들의 문제제기로 정규직이 됐다. 구의회 관계자는 "상용직 전환 이후 업무효율이 더 올라간 것 같다"며 "이로써 구의회 사무처 직원 33명 전원이 정규직이 됐다"고 말했다.

관악구는 1월 청소업무 준공영제를 도입해 대행 민간업체 8곳에서 근무하는 근로자 86명에 대해 매년 10%씩 임금을 인상하도록 하는 등 처우 개선을 하기도 했다.

서울시도 박원순 시장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처우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서울시청은 기간제법 준수에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월 기준 서울시 각 부서와 사업소에는 1,592명의 기간제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지만 2009년에 단 1명이 상용직으로 전환된 것을 마지막으로 단 한 명의 근로자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그 이전에는 2007년 7명, 2008년 6명 등 총 14명이 정규직이 되는 데 그쳤다.

시는 사무보조원, 제초작업자, 상하수도검침원 등에 대해 매년 1년 단위의 근로계약을 하고 있다. 근무기간 2년이 되면 근로기간 1년 이하의 직원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 정규직 전환을 피해왔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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