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의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실. 대기업 측의 풀무원 CJ제일제당 대상 사조그룹과 중소업체를 대변하는 연식품연합회 관계자 5명이 모였다. 두 달 사이 벌써 6번째 만남. 하지만 회의는 오래가지 않았다. 연식품연합회 참석자는 "일말의 기대조차 사라졌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오는 4일 중소기업 적합업종 2차 발표를 앞두고 최대 쟁점품목인 '두부'를 둘러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자율합의는 이렇게 사실상 물 건너갔다. 동반위 관계자는 2일 "오늘 긴급히 마지막 중재안까지 제시했지만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애초부터 두부는 뜨거운 감자였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업체간 이해가 가장 첨예하게 맞선, 중기 적합업종을 둘러싼 논란의 축소판이었다. 동반위에서는 "두부만 합의해도 절반은 성공"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두부는 1980년대 이후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에 묶여 대기업들은 애초 발을 담그지 않았다. 이 제도의 보호 아래 1984년 설립한 풀무원은 두부 사업만으로 매출 1,000억원을 돌파, 입지전적 성공을 일궈냈다. 하지만 2005년 고유업종 제도가 사라지자 CJ제일제당과 대상FNF가 시장에 뛰어들었고 세 회사의 포장두부 시장 점유율은 작년 84%까지 올라갔다. 그 사이 2,500개가 넘던 중소기업 중 900여 개가 문을 닫고 비포장두부(판두부)시장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중소업체들은 대기업에 대해 전면적 사업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주문자상표부착(OEM) 생산만이라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기업들의 OEM 생산은 평균 30~40% 수준이다.
CJ와 대상 등 대기업들은 이에 대해 '동반 성장 동참' 이미지를 의식해, 어느 정도 긍정적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뜻밖에도 중소기업에서 성장한 풀무원이 OEM축소에 대해 가장 완강한 거부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다. 그러다 보니 중소업체들은 "자기들도 한때는 중소기업이었으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아는 사람이 더 하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 덕에 컸으면서 해도 너무 한다"며 풀무원 측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풀무원쪽은 생각은 다르다. "중소기업에서 출발해 30년간 온갖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키워왔는데, 사업을 줄이라니 생살을 잘라내라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사실 CJ나 대상은 두부를 줄여도 별 타격이 없지만, 풀무원으로선 두부 비중이 워낙 커 생산을 축소할 경우 전체 매출과 수익구조에 큰 타격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양 측엔 이미 누적된 앙금도 있다. 지난 2007년 풀무원이 연식품연합회를 탈퇴하고 콩가공식품협회로 옮겨갔기 때문. 황성식 연식품연합회 전무는 "두부 재료인 콩을 회원사별로 쿼터를 정해 나눠가졌는데 풀무원이 더 많은 콩을 확보하려고 협회를 탈퇴했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측은 현재 풀무원에 대해 연합회 복귀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으로 출발해 가장 성공한 풀무원과 다른 중소기업들이 다투고 있는 것 자체가 적합업종 선정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대목"이라고 말했다. 동반위는 자율조정을 위해 계속 협의를 해 나갈지, 강제조정절차를 밟을 지 고심하는 상황. 하지만 강제 조정을 해도 업체가 거부하면 그만이어서, 두부는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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