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시장님, 1,000만 서울 시민의 살림살이를 살피는 시정의 최고 책임자가 되신 이후 정신 없고힘드시리라 생각합니다. 뒤늦었지만 평생 해보지 않았던 험한 선거전까지 치르며 서울시장에 오르신 것, 축하 드립니다.
선거 얘기를 하니 개표가 한창이던 지난달 26일 밤 생경해 하던 박 시장의 모습이 문득 떠오르네요. 그날 밤 늦게 나경원 후보가 패배를 시인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당직자들과 캠프 멤버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는 순간 박 시장의 얼굴이 굳어졌던 사실, 혹 기억 나십니까?
순간 의아해 하면서도 그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저는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선거를 도와준 여러 시민단체,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야당들, 그리고 그런 복잡한 상황에서 서울 시민의 기대치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당선의 기쁨보다 부담으로 다가와서 그랬을 겁니다.
맞습니다. 실제 박 시장이 당면한 현실이 그렇습니다. 우선 투표를 하지 않은 절반의 서울시민(투표율 48.6%)과 투표는 했지만 박 시장을 찍지 않은 또 다른 절반(박 시장 득표율 53.40%)이 매섭게 박 시장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시민단체 인사가 시의 주요 보직을 점령한다', '시정이 산으로 갈 것', '기존 사업은 모두 백지화하고, 부서는 통폐합 된다' 는 등 온갖 소문까지 퍼져 있습니다.
더구나 박 시장은 시민운동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일반 시민은 물론 언론과 정치권도 앞으로 더욱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 댈 것입니다. 시정을 펼침에 있어 특정 단체나 특정 계층에 치우치는 일이 없어야 할 명백한 이유입니다.
서울시 내부도 마찬가지 입니다. 최근 만나본 시 직원들 중 상당수가 불안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기존 오세훈 시장의 정책을 추진해온 부서나 시민단체를 상대해 온 부서들은 인사상 불이익이나 부서 통폐합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합니다.
물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겠지요. 선거를 통해 확인된 시민의 뜻을 정책에 반영하고, 선거공약을 실천하는 것은 박 시장의 의무입니다. 하지만 전임 시장의 정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타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간 시민운동가의 입장에서 시정을 볼 때 불합리한 점이 많았겠지만 시의 기존 정책 중에서도 훌륭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책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서 버려야 할 것만 버리십시오. 자칫하면 보도블록 고치는 것보다 훨씬 큰 손해가 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시는 복마전'이라는 말, 이제는 가당치 않습니다. 시에는 자부심과 봉사정신을 갖고 일하는 유능한 공무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함께 보듬고 나가는 '가슴 넓은 시장님'이 되십시오. 안이 흔들리면 박 시장의 좋은 비전과 철학도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시민들의 기대에 빨리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실 줄 압니다. 그렇다고 서두르지 마십시오. 보궐선거로 당선돼 성과를 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 시민들이 더 잘 압니다.
얼마 전 '시장이 되니 어떠시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재미 있다"고 하셨죠. 그 말 듣고 참 안심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보람을 느끼는 '즐거운 시정'을 이끌어 가십시오. 그러면 무리하지 않는, 성공하는 시장이 되실 겁니다.
송영웅 사회부 차장 heros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