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14연대의 전쟁보고서 '진중일지'에는 1907년부터 1909년까지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의 의병 학살 기록이 자세히 담겨 있다. 이 보고서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의병 토벌작전 기록에 빠짐없이 첨부돼 있는 근대적 기법의 지도다. 1861년 완성된 대동여지도 이후 이렇다 할 지도가 없었던 조선에서 일본군은 비밀리에 제작한 한반도 지도를 확보하고 군사 작전에 활용했던 것이다.
3일 밤 10시 방송하는 KBS '역사스페셜'은 구한말 일본군의 한반도 측량 침탈을 추적한다. 제작진은 '진중일지'의 지도가 필사본임을 확인하고 일본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20세기 초반 근대 지도 48만여 장 가운데 원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강행되기 전 조선이 지도 제작을 위한 측량을 일본에 허가했다는 기록은 구한말 역사 문헌 어디에도 없다.
일본군 장교 무라카미 지오키치의 일지는 일본이 18세기 후반 조선과 청나라에서 비밀 측량을 진행했다고 말해준다. 그러나 일본은 무라카미가 조선에 입국하기 전부터 불법 측량을 자행하고 있었다. 일본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육군참모본부는 1878년 창설 이래 밀정을 이용한 도둑 측량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장교들을 유럽으로 유학 보낼 정도로 지도 교육에 공을 들였으며 이후 이들을 스파이로 선발해 조선에 파견했다.
한반도를 도둑 측량한 최초의 첩보 장교는 가이즈 미쓰오였다. 이후 1887년까지 이소바야시, 사코, 와타나베 등의 첩보 장교들이 속속 조선에 잠입했다. 첩보 장교들은 한복을 입고 조선인 행세를 하며 지도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역사스페셜'은 한반도 남단에서 서울을 거쳐 최북단까지 조선 팔도를 정탐한 일본군 첩보 장교 6인의 측량 루트를 분석, 재현한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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