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아즈미 준(安住淳) 일본 재무상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도쿄외환시장에서 엔화를 팔고 달러화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장 개입을 했다"고 외환시장 개입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3월과 9월에도 일본 외환당국은 개입 사실을 발표했다. 단지 개입 여부만이 아니라 일정기간 뒤엔 개입 규모까지 공개한다.
일본의 이런 관행은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않는(NCND) 정책으로 일관하는 우리 외환당국과는 180도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환율조작국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며 시장 개입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런데 왜 일본 외환당국은 낱낱이 공개를 하는 것일까.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일 "현재의 엔고(高) 현상이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공공연히 밝힘으로써 시장 개입의 정당성을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숨어서 개입하는 것보다 당당히 개입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환율조작 시비를 피할 수 있는 길로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즈미 재무상이 기자회견에서 "최근 엔화 환율은 일본의 실물 경제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엔화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국제통화여서 외환시장 개입 시 주요국들의 사전 동의가 필수적이라는 점도 또 다른 이유다. 선진 7개국(G7)과 공조 개입에 나섰던 3월과 달리 8월과 10월에는 일본 외환당국이 단독 개입을 했지만, 이 또한 G7의 사전 동의를 받았을 거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구두개입을 통해 개입 효과를 극대화를 노리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엔화는 전 세계 외환시장에서 24시간 거래되기 때문에 아무리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도 개입 효과가 충분히 확산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구두 개입을 통해 실물 개입 효과를 확대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공개 물량 공세에도 불구하고 개입의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고민이다. 개입 직후 달러당 79엔대까지 올랐던 엔화 환율은 다시 78엔대로 추락 중이다.
우리의 시장 개입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시중은행 한 외환딜러는 "외환시장 개입 방식의 차이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국력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라면서도 "우리도 시장 개입의 정당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가급적 시장 개입을 삼가는 게 좋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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