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그리스 국채 50% 탕감안에 극적 합의해 한숨을 돌렸던 유로존이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극도로 혼란스런 양상으로 치닫는 그리스 정계가 또 발목을 잡았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가 1일 국민투표 제안과 함께 요구한 내각 신임투표가 유로존의 위기감을 자극하는 첫번째 요인이다. 4일 실시되는 신임투표를 앞두고 여당의원 1명이 탈당, 파판드레우 총리의 집권 사회당은 과반수에서 불과 1석 많은 152명의 의원만 남게 됐다. 여기에 여당 의원 6명이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신임투표는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신임투표가 부결되면 파판드레우 총리는 퇴진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해야 한다. 이 경우 파판드레우 총리가 제안한 국민투표는 물 건너가나, 신임 총리가 여론을 앞세워 유로존에 긴축정책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유로존 해법이 다시 2년 전으로 후퇴할 수 있는 것이다.
유로존은 그리스가 긴축안을 받지 않으면 추가 구제금융을 집행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리스는 이달 중순까지 6차 구제금융분(80억 유로)을 받지 못하면 국고가 고갈돼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불가피하다.
신임투표를 통과하더라도 파판드레우 총리가 제안한 국민투표가 유로존을 뒤흔들 핵폭탄급 뇌관으로 남아있다. 그리스 헌법 44조는 재정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결국 파판드레우 총리는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잔류 여부를 묻는 방식으로 긴축안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는 편법을 쓸 가능성이 많다.
국민투표의 결과가 어떨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통과되면 정권과 유로존 해법의 정당성을 획득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부결될 경우의 파장은 재앙 수준이다. 유로존 탈퇴→구제금융 중단→그리스 디폴트→이탈리아 등 연쇄몰락→유럽 은행시스템 붕괴라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 “국민투표는 자살행위”라는 비판은 이 때문이다.
그리스가 최소 수개월에 걸친 복잡한 정치적 과정을 거치는 동안 유로존이 ‘불확실성’이라는 악재를 계속 짊어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유로존 국가들은 그리스 정부의 돌발행동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네덜란드 노동당은 “국민투표 절차가 계속되면 구제금융안 합의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유로그룹 의장인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는 “(국민투표가) 부결되면 그리스는 파산을 면치 못할 것”이라 경고했다.
파판드레우 총리의 결심을 돌리려는 움직임도 분주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일 파판드레우 총리를 G20 정상회담 개최지인 프랑스의 칸으로 긴급 호출해 3자 회동을 연다. 회동 전에 “독일과 프랑스는 구제금융안이 그리스 경제를 정상으로 돌려 놓을 것을 확신한다”는 성명이 나온 점에 비춰 독ㆍ프 정상이 파판드레우 총리에게 국민투표 제안을 철회하도록 회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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