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최근 저축은행 피해자 원금 보장 한도를 5,0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20% 확대하는 내용의 피해자 보상 방안을 의결했다. 2008년 9월부터 올해 말까지 영업정지 당한 19개 저축은행의 5,000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 채권 투자자가 대상이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구제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나온 방안이지만, 금융계를 중심으로 예금자보호법 근간을 위협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저축은행 피해자 보상은 감정적으로 판단할 성격이 아니다"며 "예금자 보호제도는 어려운 상황을 당한 예금자를 도와주기 위한 복지 제도로만 이해해선 안 되며, 이 제도가 가진 역기능과 순기능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부작용이 다소 예상되더라도 저축은행 예금자들의 무더기 금융 피해를 막기 위한 차차선의 대안이라는 시각도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금융 당국이 저축은행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봤을때, 국회와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합리적인 공동 보상대책을 제시하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 반대
금융시스템은 예금과 대출을 중심으로 하는 간접금융제도와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직접금융제도로 나누어진다. 간접금융제도에서는 은행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은행은 예금자의 예금을 받아서 대출로 운용한다.
은행입장에서 예금은 갚을 돈 곧 부채이고 대출은 받을 돈 곧 자산이 된다. 그런데 은행이 부실이 되면 문제가 커진다. 한 은행이 예금을 못 돌려주게 되면 전염효과가 발생한다. 멀쩡한 은행에 예금을 한 예금자까지 동요하면서 모든 은행에서 예금대량인출이 발생하고 국가경제가 일대 혼란에 빠지는 상황이 온다. 결국 이러한 전염효과 내지는 쏠림효과가 전체경제를 뒤흔드는 것을 막기 위해 예금자 보호제도가 도입되었고 이러한 제도가 금융시장 안정성 제고에 크게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금을 국가가 보전해주는 경우 예금자들은 어떤 은행에 예금을 해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금리 높은 은행만 찾아서 예금을 하게 되고 은행이 우량한지 아닌지에 대해 사실상 전혀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또한 이 상황에서 은행 경영진은 예금으로 조성된 자금을 함부로 운용하려 들게 된다. 정해진 예금이자만 지급하면 자금운용에서의 나머지 이익은 모두 은행 몫이 되므로 대출 운용이 느슨해지면서 소위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처럼 예금자 보호제도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제도이다.
최근의 저축은행사태는 사실상 수많은 문제점들의 종합선물세트 수준이다. 가장 큰 것은 대주주 내지 은행경영진의 모럴해저드 문제였다. 부산은행 경영자는 무려 5조가 넘는 돈을 120여개의 위장업체를 직접 설립하여 운용하는 도덕적해이의 극치를 보였다. 또한 피규제자인 저축은행이 감독당국을 자기편으로 만들어버리는 '포획'의 메커니즘도 작동했다. 여기에 정책당국과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상호신용'금고'를 저축'은행'이라는 '멋있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는 바람에 예금자의 혼란이 초래되었다. 또한 소위 88클럽이라는 제도를 통해 우량저축은행에 대해 자금운용제약을 대폭 완화하는 조치도 취해주었다. 감독당국은 부실에 대해 매를 때려야 하는 입장인데 정책당국과 정치권이 저축은행을 키워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매를 때리기도 힘들어져 버렸다. 또한 높은 금리를 받기 위해 안전한 일반은행을 마다하고 덜 안전한 저축은행에 예금을 한 부분에 대해 약간의 자기책임도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일부에서 나온다. 이번 사태는 이처럼 모든 주체가 개입되어 총체적인 문제점을 야기시킨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태 직후 오히려 예금보호한도를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그런데 지난달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저축은행 피해자 보상 대상을 '2008년 9월부터 2011년 말까지 영업정지를 당한 저축은행의 5,000만원 초과예금자와 후순위 채권투자자'로 정하고 이중에서 6,000만원 미만의 예금자에게 피해 금액 전액을 보상해 주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 예금자 보호한도를 6,000만원으로 올리는 조치이다. 이제 이러한 조치가 일단 취해지고 나면 앞으로 동일한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6,000만원까지 보상해 달라는 시위가 벌어질 것이다. 왜 우리만 차별하느냐는 지적을 당해낼 수 있는 재간은 없다. 물론 심정적으로만 보면 전액을 다 보장하고 모든 예금을 다 돌려주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모은 돈인데'라는 울분 섞인 주장에는 모두들 억장이 무너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예금보험기금의 고갈 문제와 아울러 이번 조치가 낳게 될 부작용을 감안한다면 아쉽더라도 일단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다. 예금자 보호제도는 어려운 상황을 당한 예금자를 도와주기 위한 복지제도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되며 이 제도가 가진 역기능과 순기능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물론 후순위채 불완전판매 등의 이슈는 개별적인 사법적 접근이 필요하다.) 예금보험한도 증액 문제는 보다 장기적인 검토와 연구를 거쳐 중장기적 과제로 추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한시적 조치가 사실상 예금보험제도를 영구히 수정하는 식으로 가서는 곤란하다.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 찬성
저축은행 피해자들의 원금보장 한도를 기존 5,0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증액하는 방안 등을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가 합의했다. 8월 국회 저축은행 특별위원회가 밀어붙이려다 좌초된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 방안을 의결한 것이다.
이 방안에 따르면 ‘2008년 9월부터 2011년 말까지 영업정지된 19개 저축은행의 5,000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권 투자자’에 대해 예금은 6,000만원 한도에서 전액 보상하고, 6,000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 투자자는 보상심의위에서 결정한 보상금액에 따라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와 금융권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의식한 금융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번 방안이 나오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를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 부실감독에 따른 저축은행의 파산, 감독당국과 저축은행의 유착에 따른 저축은행들의 부실경영과 영업 관련 상품의 사기적 판매문제, 저축은행과 정치권의 밀착 등에 따른 장기간 누적된 피해 및 정치권 등의 부담 등이 이 법안이 검토된 이유들이다.
이번 구제는 억울하게 잘못된 예금가입을 보상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불완전 판매 피해를 보상해 주는 측면이라고 볼 때, 이번에 부각된 저축은행 사례에만 적용하기보다는 불완전 판매 피해가 이루어지지 않게 적용되는 내용까지 담는다면, 더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전 금융권적인 문제인 불완전 판매 관행이 사라지도록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아쉬운 점은 남아 있다.
사실 예금자보호법의 보호한도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보고 판단해야 함에도 그 기준보다는 예금자보호라는 명분하에 부실한 금융기관의 영업기반을 고려해 한도가 설정됨으로써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금융기관별 한도의 재조정을 통해 서민금융소비자의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억울한 예금자들을 보호한다면서 변칙적으로, 한시적으로 한도를 증액한다는 것에 대한 다른 금융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금융질서, 법 감정 측면의 반대 논리를 틀린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주장과 국회 등에서 나오는 구제방안을 고려하면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기간의 부실경영과 감독이 이러한 사태의 주 원인이었고, 정책당국의 책임과 어느 정도의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해결 방법이 문제였다. 국회의 법안이 최선의 안은 아닐 수 있지만, 현 시점에서는 차선 혹은 차차선의 대안일 수 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금융당국, 즉 금융위나 금감원은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런 실정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책임의 통감과 조치, 보상에 대한 방안의 제시가 없다는 것이 법안이 나오게 된 1차 원인이다. 이런 점에서 국회와 정부 등은 이번 기회에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소비자보호라는 정책의지를 보이는 기회로 삼아 합리적인 공동 보상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정책당국의 책임부분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일정 부분 책임을 묻고 피해대책을 마련토록 한다는 것을 선례로 남겨야 한다. 잘못의 이유을 아는데 책임지는 당사자나 방법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제라도 금융당국은 일정부분 책임진다는 자세로 국회와 함께라도 법안의 협의와 보완을 통해 보상방안이 제시되도록 하여야 한다. 아울러 향후에는 금융상품 판매구조에서 전 금융권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불완전 판매로 인한 금융소비자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일본의 금융상품거래법과 같은 법도 입안해야 한다. 교묘히 법적 서류를 갖춘 것만으로 불완전 판매를 부인하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금융회사와 금융상품판매 질서를 개선시켜야 한다. 금융사 스스로 혹은 타율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소비자 보호제도나 정책 도입, 사법부의 인식변화도 시급하다 하겠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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