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도 도발도 없었다. 일찌감치 '19금(禁) 연극'이라는 수식어를 먼저 알렸던 연극 '블루룸'이 지난달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막을 올렸다. 1990년대 후반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여주인공 니콜 키드먼의 전라 노출 연기로 화제가 됐던 라이선스 연극이지만 한국적 요소들이 가미되면서 어정쩡한 무대가 돼 버렸다.
원작은 오스트리아 극작가 아서 슈니츨러의 1897년작 '라롱드'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영국 극작가 데이비드 헤어의 작품이다. 창녀와 택시기사, 가정부와 주인집 아들, 정치가와 그의 아내, 모델과 극작가, 여배우와 귀족 남자 등 10명의 인물이 만들어가는 부도덕한 관계 속에 성(性)을 이야기한다. '라롱드(La Ronde)'는 프랑스어로 원, 순환이라는 의미. 극은 거리의 여자와 택시기사의 만남으로 시작해 기사가 다시 클럽에서 가정부와, 가정부는 또 주인집 아들과 관계를 갖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진행된다. 등장인물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장치다.
정식 라이선스 공연으로는 국내 초연인 이번 무대는 남녀 배우 한 사람씩만 등장하는 2인극이다. 오랜만에 무대 연기에 도전한 송선미와 김태우가 각각 1인 5역을 맡았다.
이들이 연기하는 여러 캐릭터는 다양한 사회 계층을 상징한다. 나이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현대인의 성적 욕망과 이를 발현하는 방식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남녀 10쌍의 섹스를 통해 육체적 사랑이 충족되는 순간 소멸되고 마는 인간 관계의 공허함과 허망함을 그린다.
그러나 100분 간의 공연이 끝난 후 관객이 이 같은 주제의식을 안고 공연장을 떠나기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여배우의 노출을 연기의 한 과정보다는 화제성 이벤트로 인식하는 한국적 현실 탓에 '19금 연극'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노출 수위가 높지 않은 것은 차치하더라도 번역투의 대사에서 전해지는 공감도도 낮다. 더욱이 1인 5역의 각각의 캐릭터가 전혀 차별성을 띠지 않는 여배우의 연기는 계층간 벽을 허무는 인간의 성적 욕망을 표현하기에 역부족이다. 여자 역할은 송선미와 함께 연극배우 송지유가 번갈아 맡는다. 12월 11일까지. 1588-5212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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