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약국, 제약사들이 리베이트 수수 금지를 결의하면 정부가 의료수가를 올려주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황당하다. 리베이트 수수는 불법행위가 분명한데 수익금을 챙겨줄 테니 불법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권유하는 꼴이 아닌가. 정부의 불법행위 대응이 무기력하기 짝이 없고, 자정 결의를 한다고 리베이트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애처롭다. 리베이트는 그 자체를 철저히 단속하고, 수가 인상이 불가피한 대목이 있다면 그것은 별도로 조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얼마 전 모 대학병원에서 리베이트 분배를 둘러싸고 의사들끼리 주먹다짐까지 벌어진 일이 있었다. 일부는 병원 운영비로 사용됐지만 교수들이 억대의 돈을 챙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의료진에게 3년 동안 530억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6개 제약회사에 11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부산에선 조직적 리베이트에 연루된 의사와 제약회사 간부 등 51명이 적발됐고, 모 제약회사가 38억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밝혀진 것도 최근의 일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11월 리베이트에 대해 쌍벌제를 도입하면서 자격정지, 징역ㆍ벌금과 함께 수수금액 전액을 몰수ㆍ추징토록 했다. 이어 올해 4월에는 검찰, 국세청, 경찰청, 식약청 등과 합동단속을 벌인다고 법석을 떨었지만 용두사미로 흐지부지됐다. 대학병원 주먹다짐 사건 이후 자체 조사만으로도 운영비 유용, 억대 금품 수수 등이 밝혀진 것을 보면 정부의 합동단속이 얼마나 겉치레였는지 알 만하다.
상황이 이런데 자정결의를 하면 의료수가를 올려주겠다는 방침에 성과가 있을 리 없다. 더구나 리베이트엔 현금만이 아니라 해외여행 경비, 승용차 임차료, 골프 접대, 시설 임차료 등 갖가지 수단이 동원되고 있는데 이를 일반국민이 내는 수가로 보전해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자정결의를 애걸하는 일은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일반인의 뇌물수수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면서 의약계의 리베이트에 유난히 약해지는 이유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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